▲2020년 9월 28일 열린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Dong Ha Choi
소녀상을 무사히 설치하고 성대한 제막식까지 마치자 바로 다음날인 9월 29일 일본정부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관방장관인 가토 가쓰노부가 소녀상 설치에 유감을 표명하며 소녀상 철거에 앞장설 것을 공표한 것이다. 이틀 후 파리에서는 모테기 도시미쓰(일본 외무상)와 하이코 마스(당시 독일 외무부장관)와의 회의가 잡혀 있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화상통화로 대체하면서, 외무상이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정부의 반응이 있을 줄 짐작은 했지만, 장관급 고위공무원의 공식적인 언론 선포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설치 열흘 만에, 허가를 내준 당사자인 미테구청에서 철거 명령을 통보했다.
10월 7일 오후 5시, 도로청과 녹지청 담당공무원 두 명이 철거명령서를 손에 들고 직접 사무실을 찾아왔다. 속달 우편도 아니고, 이 또한 독일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서류에는 일주일 안에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최소 2500유로(약 337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가까스로 세운, 1톤이 넘는 소녀상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철거 이유는 소녀상 비문 내용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으며, 소녀상 설치는 한일 간의 갈등을 독일로 끌고 들어와 한국편을 들도록 독일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일본정부가 국제사회 로비 시 활용하는 프레임의 전형이었고, 독일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공문을 받자마자 역사학자이자 전시 성폭력 전문 여성학자인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와 통화해 변호사인 그의 파트너에게 우리 신청서를 전달했다. 그는 소녀상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 과거 일본정부의 소녀상 관련 행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돼 있는 신청서 내용을 보더니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행정법 전문 페미니스트 여성 변호사를 추천해줬다. 변호사는 주말 동안 폭풍 리서치를 한 다음 10월 13일,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정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소녀상을 철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세계 시민사회에서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독일 시민들은 이 사안을 '표현의 자유를 침범한 공권력'이란 프레임으로 보고 함께 분개했다. 정치인, 언론, 유명인사들이 반응했고,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단 며칠 만에 1만2000명이 넘는 서명이 모였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제안이 쏟아졌고, 국내외 언론사의 문의가 빗발쳤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시차를 무시하고 쏟아지는 국내 언론사 인터뷰 요청에 응하느라 한정화 대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여든 시민들 "우리가 소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