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자리북한군 8.18도끼만행사건의 빌미가 되었던 미루나무가 있었던 자리에는 당시 숨진 미군 장교의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 밑의 동그란 원안은 당시 미루나무 크기이다
이정민
사제단의 핵심 인사들이 구속되고 남아 있는 사제들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때 국내 상황은 남북대치와 정부의 대국민 강경조처로 극한으로 치달았다.
8월 18일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는 만행이 자행되면서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제1야당 대표가 된 이철승이 "안보를 고려해서 자유언론의 한계가 있어야 하며 현체제는 부인하지 못한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10월에는 정부기관요원 박동선이 정부지시로 연간 50~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ㆍ선물ㆍ선거자금 등으로 90여 명의 미 상ㆍ하원 의원 등에게 매수공작을 해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폭로했다. 위기는 독재자들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그래서 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사제단은 위기 국면의 정국과 내부로부터의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현실을 향한 복음을 펼치면서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유신체제 집권자들보다도 교회 내부의 일부 주교와 사제들의 비협조적 성향이었다. 유신체제의 집권세력과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현상고수적인 주교들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어떤 형식으로든지 이를 콘트롤할 방안을 강구하였다." (주석 4)
이들 주교들은 상당히 치밀하게 계산된 조치들을 추진하였다. 그 중 첫 번째 신호가 L보좌주교가 초안을 한 것으로 알려진 1975년 초의 주교단 메시지일 것이다.
이 메시지를 작성함에 있어 가톨릭교회의 <사목헌장>을 인용하였는데 내용의 앞뒤 부분을 기술적으로 거두절미하여 구절만 나열하였다. 즉 뒤에 나오는 시민적 권리행사의 내용을 삭제하여(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버렸다. 그리하여 <사목헌장>의 전체적 내용을 읽어보지 못한 신자들과 일반인들로 하여금 판단을 잘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
이 메시지 발표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측은 반박성명을 내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될 경우 가톨릭교회가 분열되어 있다는 인상을 줄까봐 참았다고 Y신부는 말한다.
1975년 5월의 주교단 메시지도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왔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지금까지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기능을 교회 내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에 흡수하고 시국문제는 사제단보다는 주교단의 차원에서 직접 대처하겠다는 것이었다. (주석 5)
3ㆍ1명동사건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1년 전에 패망한 베트남사태를 들어 정치군인들의 독재ㆍ부패보다 저항세력에 책임을 돌리는 시각이었다.<조선일보> 사설을 보자.
그토록 끈질기게 종교가 정치에 간섭한 월남이 오늘날 어떤 꼴이 되었으며, 그토록 정력적이던 성직자와 사원, 신앙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다 같이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적과 싸우는 나라에서 고고하기 짝이 없는 진리와 민주주의만 내세워 그토록 극성스럽게 세속의 현실정치를 몰아친 결과는 민심의 혼란을 일으켜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일체감과 국제적 신뢰를 상실케 함으로써 나라와 민주주의와 종교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주석 6)
오랜 세월 보수의 늪에 안주해왔던 천주교 안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각이 적지 않았다.
반드시 이러한 주장과 궤적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교회 안에도 3ㆍ1사건에 대해 시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3.1절 명동기도회사건을 빌미로 신부들이 억울하게 유신정권의 정치조작과 보복에 의하여 투옥되었는데도, 마치 신부들이 3.1민주구국선언사건을 계획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일으킨 양 구속된 신부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천주교회 안에 넓게 퍼져 있었다. (주석 7)
정의구현사제단은 안팎의 도전에 직면하였다.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밖의 적보다 내부의 등 돌림이 더 어렵다. 그러나 천주교 내부에는 양식 있는 성직자와 신자가 훨씬 많았다.
주석
4> 앞의 책, 114쪽.
5> 윤일웅, <유신정권과 정의구현사제단>, <신동아>, 1983년 12월호.
6> <조선일보>, 1976년 3월 14일자 사설.
7> 김정남, 앞의 책,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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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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