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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생각, 정말 당연할까

[류변의 급진적 책읽기] 3회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엘러스데어 코크런 지음

등록 2022.02.24 11:06수정 2022.02.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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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해방물결과 국제동물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021년 10월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삼거리에서 개식용 도살 반대 대형 현수막 시위를 하고 있다.
동물해방물결과 국제동물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021년 10월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삼거리에서 개식용 도살 반대 대형 현수막 시위를 하고 있다. 이희훈
  
"한 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마하트마 간디)
  
얼마 전 아파트 옆 공원에 반려견과 산책을 갔더니 일부 노인들이 '공원에 개를 데리고 와서 똥, 오줌 냄새나게 한다'며 질색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굳이 그 공원에 가지는 않지만, 나는 생각한다. '아니, 개는 이 지구 위에 똥, 오줌 쌀 권리가 없는가?'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반려인구가 크게 늘어 전체 가구 중 29.7%를 차지한다. 숫자로는 약 1500만 명이 반려인구다. 이에 따라 동물 보호,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정부도 반려동물 보호 강화를 위한 입법을 추진 중이다.


대선후보들도 반려동물 양육비 절감부터 동물학대 근절 방안, 개 식용 금지까지 반려동물과 관련한 다양한 공약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비좁고 비위생적인 우리 안에서 인간을 위한 고기가 되기 위해 한평생 갇혀 지내야 하는 동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실험실 동물, 인간의 여가와 오락을 위해 갇혀 사는 동물원의 동물을 위한 법과 공약은 여전히 없다.

이 동물은 인간이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인간이 인간을 위해 동물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은 윤리적인가? 동물은 자신의 본성에 맞는 삶을 향유할 권리가 없는가?

인간과 비인간동물은 '다종 공동체' 안에 함께 존재​

동물윤리의 선구자 피터 싱어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도덕적 지위를 가지며 이러한 존재들에 대하여 우리는 동등하게 도덕적 고려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는 것은 '종'에 따라서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종차별주의'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동물윤리론을 수용해 많은 국가들은 동물에 대해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복지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동물을 '보호'하는 법제에서 동물의 이익은 인간의 이익보다 우선될 수 없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의 동물권 이론은 동물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위한 정치 시스템의 변화를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 핵심을 간결하게 풀어 쓴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이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책 표지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책 표지창비
 


이 책의 저자 엘러스데어 코크런은 영국 세필드대학교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정치이론의 관점에서 동물윤리 문제를 왕성하게 연구해온 학자이다. 저자는 기존의 동물윤리론은 동물과 인간의 도덕적 관계와 권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적어도 정치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불충분했다면서 동물 윤리학에서 동물 정치학으로 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한 이래 정치는 인간의 본질이자 목적이며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게 하는 배타적 특성으로 간주되었고, 동물과 정치는 철저히 분리되었지만 이제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적인 근거는 인간과 동물은 서로 고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깊이 얽혀 있으므로 종-배타적인 '인간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대신 우리는 서로의 운명이 온전히 얽혀 있는 '다종 공동체'안에 살고 있다.

즉 인간과 비인간동물은 미래까지 서로 깊게 의존할 정도로 관계가 얽혀 있는 '운명 공동체'안에서, '돌봄과 의존으로 얽힌 관계'로 존재하므로 동물 역시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동물복지법은 인간의 이익에 따라 동물의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것, 그저 동물이 고통받지 않게 보호하는 것 이상으로 동물의 '지속적 삶에 대한 이익'을 보호해야 할 요청에는 부응하지 못한다.

독일, 스위스, 인도 등과 같이 동물보호 조항을 헌법에 직접 규정하면 어떨까? 그러나 독일 헌법은 현대화된 달걀 생산 시스템 하에서 분쇄되거나 가스로 죽는 수탉을 보호하지 못한다. 동물의 '권리'가 아닌 '보호'를 규정한 헌법 하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산업적 이해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동물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동물에게 법적 인격을 인정해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소송을 통해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의 성원권을 인정해야 하며, 동물권리를 대변할 전담 의원을 두는 등 정치 시스템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단지 동물에 대한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고 역설한다.

동물권은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반려인구가 크게 늘어 전체 가구 중 29.7%를 차지한다. 숫자로는 약 1500만 명이 반려인구다.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반려인구가 크게 늘어 전체 가구 중 29.7%를 차지한다. 숫자로는 약 1500만 명이 반려인구다. envato elements
 

두 가지 비판 내지 비아냥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어찌 권리를 인정한단 말인가?' '인간의 권리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 무슨 동물권이냐?'

앞의 질문에 대해서는 저자가 강조한 동물의 내재적 가치, 삶을 지속할 이익, 그리고 '다종공동체'로 반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결과가 쌓이면서 언어, 지능, 문화, 의사소통, 협력, 사회성, 이타성 등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하고도 특별한 능력이라는 신화가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가하고 싶다.

두 번째 비판에 대해서는 우선 인권의 주체인 인간 개념의 가변성을 말할 수 있겠다. 프랑스대혁명 이래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을 지니며 평등한 존재라고 선언되었지만 그 '인간'의 범주에 여성과 흑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성소수자, 장애인, 유색인종, 빈민, 노동자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는 사회는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낙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류는 포기하지 않는 투쟁을 통해 권리의 주체인 인간의 범위를 확대시켜왔다. 심지어 사람이 아닌 회사에 대해서도 법적 인격과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 이처럼 권리의 주체인 '인간'의 범주가 결코 자명하거나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면 동물이라고 주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다음으로 동물권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에게도 이익이 된다. 세계 각국의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물의 법적·도덕적 지위 향상과 함께 기후위기 대응, 지속 가능한 경제·복지 정책, 안전한 환경과 먹거리 보장 등 '다종공동체' 안의 모든 존재를 위한 법제도적 변화를 추구한다. 즉 단지 동물을 잘 보호하자는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닌 것이다.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 )안에 동물이 아닌 다른 취약한 집단이나 소수자를 넣어도 될 것이다. 즉 동물을 존중하고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라면, 흑인, 여성, 성소수자, 아동, 노인, 이주민,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험을 무릅쓰고 인권 향상을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은 많은 보통사람들도 인권이라는 기차에 무임승차할 수 있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시대의 인권은 또 한 번의 도약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자연물도 권리의 주체가 되며 법과 거버넌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인권담론이 그것이다. 인권담론이 앞으로도 인간만을 인권의 주체로 보고 인권의 이름으로 인간의 성장과 발전을 최대한으로 추구한다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자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조효제, 「탄소사회의 종말」 참조).

인간은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시대를 맞아 절절히 체감하고 있다. 인간만의 예외성과 우월성을 강조해 온 인간중심주의와 결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기후위기와 동물권을 연결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정치시스템의 변화는, 결국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변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숙고할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앨러스데어 코크런 (지은이), 박진영, 오창룡 (옮긴이),
창비, 2021


#동물권 #동물복지 #동물윤리 #동물해방 #동물의정치적권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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