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3ㆍ1민주구국선언' 반유신의 횃불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18] 3.1민주구국선언 징검다리 역할 한 함세웅

등록 2022.04.24 14:21수정 2022.04.24 14:21
0
원고료로 응원
a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 당시 모습. ⓒ 김대중평화센터

 
76년 3월 1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3ㆍ1혁명 57주년을 기념하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약 7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기도회는 예정대로 진행되다가 기도회가 끝나갈 무렵 이우정 전 서울여대 교수가 미리 준비한 〈민주구국선언〉을 낭독함으로써 유신체제와 재야지도자들이 정면대결하게 되는 이른바 '3ㆍ1민주구국선언사건' 또는 '3ㆍ1명동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날 전격적으로 발표된 〈민주구국선언〉의 내용은 "①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②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③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의 과업이다" 라고 하는 세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선언문은 결론에서 "이 때에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 있다. 그것은 통일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한 최선의 제도와 정책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헌장이다. 다가오고 있는 그날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민주역량을 키우고 있는가, 위축시키고 있는가?" 라고 묻고 있다.

구국선언문에 서명자는 윤보선ㆍ김대중ㆍ함석헌ㆍ함세웅ㆍ이우정ㆍ정일형ㆍ윤반웅ㆍ김승훈ㆍ장덕필ㆍ김택암ㆍ안충석ㆍ문정현ㆍ문동환ㆍ안병무ㆍ이문영ㆍ서남동ㆍ이해동ㆍ은명기 등 정계ㆍ종교계ㆍ학계의 지도급 인사들이다. 

선언문을 발표한 재야인사들과 신자들은 명동성당을 내려오면서 시위에 들어가려 했으나 출동한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되었다. 경찰은 이날 집회에 모인 사람 가운데 이우정ㆍ장덕필ㆍ문동환ㆍ김승훈을 연행하고, 그날부터 1주일 사이에 선언문에 서명한 대부분을 연행했으며, 윤보선 전 대통령만이 자택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어찌보면 유신시대에 가끔 있었던 재야 인사들의 '시국선언' 사건이었다. 경찰의 신속한 대처로 거리에서 시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국가전복의 공안사건'으로 다루면서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건의 보고를 받은 박정희가 서명자 중에 김대중의 이름을 발견하고 '엄벌'을 지시함으로써 긴급조치 위반사건이 공안사건으로 확대되었다. 

나중에 정보기관원한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3.1절에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일이 보고된 게 그날 오후였대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편안히 술 마시면서 쉬고 있는데 그때 보고가 들어간 겁니다.

"아, 지금 명동에서 민주구국선언이란 걸 발표했는데……"
"뭐라고?"
"거기에 김대중 이가 있답니다."
"뭐? 김대중이?"


본래 박정희가 김대중 말만 들으면 질색을 했거든요.

"다 구속시켜버려!"

사실 3.1 민주구국선언은 미사 봉헌한 걸로 끝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박정희)이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이걸 국제적인 사건으로 키워버린 거죠. 이 사건으로 김대중ㆍ윤보선 같은 정치인에다 변호사, 교수, 목사, 저희 같은 사제, 그리고 여성들까지 줄줄이 입건이 됐어요. 한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거울이 돼버린겁니다. 결국에는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재촉한 셈이 되었지요. 우리끼린 이걸 신학적으로 해석해요. 이건 사람이 일으킨 사건이지만 그 안에 하느님의 섭리가 임했던 거라고요. 하느님이 사건을 통해 역사를 바꾸신 거라고요. (주석 1)

3.1민주구국선언 사건은 함세웅과 깊이 연고를 갖고 있었다. 3.1절을 기해 기독교 신ㆍ구교와 재야 민주인사들이 명동성당에서 합동으로 기도회를 열기로 하고, 그 징검다리 역할을 그가 하게 된 것이다.

3.1절이 되면 독립기념일 미사와 더불어 구속자들을 위한 석방 미사를 봉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명동성당 신부님께 이런 생각을 밝히고 미사 봉헌 허락도 받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2월 하순, 우연히 문익환 목사님을 만나뵙게 된 거예요. 목사님이 "3.1절에 혹시 무슨 계획이 있어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명동에서 이런저런 미사를 봉헌할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당신도 뭔가를 계획 중이었는데 장소를 못찾았다는 거예요. 

예배당이나 다른 회관도 여의치 않다면서 명동성당에서 함께할 수는 없겠느냐고 물으시기에 제가 "좋습니다. 저희들 미사 봉헌하고 2, 3부는 목사님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렇게 약속을 하고 헤어진 뒤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다니셨어요. '3.1민주구국선언'을 준비하면서요. (주석 2)

3ㆍ1민주구국선언 사건은 국제적인 주목을 끌면서 외신들이 자세히 보도했으나, 국내 언론은 3월 10일까지 한 줄도 보도하지 못한 채 정부의 공식발표로 겨우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는 서울지검 서정각 검사의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번 사건의 주동자인 구 정치인과 재야 일부 인사들은 오랜 동안 정권쟁취를 책동해왔으나, 유신체제의 공고화로 국내정국이 안정되고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이루어져 통상방법으로는 그 목적달성이 어려워졌음이 명백하게 되자, 이들은 (…) 일부 신부와 목사, 일부 해직교사 등 반정부인사들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3ㆍ1운동 또는 4ㆍ19와 같은 학생을 중심으로 한 민중봉기를 기도ㆍ획책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올해 3ㆍ1절을 기해 소위 민주구국선언이란 미명 아래 마치 국가존망의 위기가 목전에 다가온 양 국내외 제반정세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유신헌법과 대통령 긴급조치의 철폐 및 현정권의 퇴진을 주장ㆍ선동한 사실이 인정되는 바이고, 명백히 대통령 긴급조치 9호에 위반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전복선동' 이라는 공안사건으로 단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연행과 수사를 벌였다. 


주석
1> <악마 기자 정의 사제>, 39쪽.
2> 앞의 책, 38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AD

AD

AD

인기기사

  1. 1 서양에선 없어서 못 먹는 한국 간식, 바로 이것
  2. 2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3. 3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4. 4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5. 5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