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는 철권통치로 민중을 억압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군사정권의 붕괴는 힘이 아닌 양심과 진실에 의해서였다. (박군 고문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신군부는 철권통치로 민중을 억압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군사정권의 붕괴는 힘이 아닌 양심과 진실에 의해서였다. (박군 고문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이 서울교구 홍보국장으로 힘겹게 주보를 제작하고 있을 때, 5공 정권의 말기증세는 더욱 심화되고 이에 민주세력의 저항도 거세게 전개되었다. 1986년의 주요 사건이다.
2월 12일 - 야당, 1000만 명 개헌 서명운동 돌입
4월 28일 - 서울대생 김세진ㆍ이재호, 신림동4거리에서 분신(김세진 5월 3일, 이재호 5월 26일 사망)
5월 2일 - 대한변협 〈1985년 인권보고서〉 발간해 고문과 수감자 폭행 등 인권침해 사례 발표
5월 3일 - 5ㆍ3인천사태
5월 6일 - 보안사, 서노련 활동가 6명 불법연행
7월 3일 - 부천서 성고문사건 권인숙, 강제추행 혐의로 문귀동 고소
7월 16일 - 검찰, 부천서 성고문사건 근거 없다고 수사결과 발표
9월 6일 - 월간 <말> 특집호 '보도지침' 발간
10월 17일 - 검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고 발언한 신민당 의원 유성환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10월 20일 - 경찰, 구국학련의 상부조직 '노동해방전선' 적발
10월 28일 - 건국대 점거농성사건
11월 26일 - 정부, 북한의 금강산댐 위협에 대응한다며 평화의 댐 건설 발표
전두환 정권의 타락상은 부천서 성고문사건으로 나타났다. 사건의 본질도 추악하지만 은폐조작은 더욱 용서받기 어려운 만행이었다 언론기관에 보도지침을 내려 '부천서 성폭행사건'이라 쓰지말고 '부천서사건'으로 보도할 것을 지시하는가 하면 출입기자들에게 거액의 '촌지'를 뿌려 사건을 축소하려하고, 검찰과 공안 당국은 권인숙씨의 성폭행 주장을 "혁명을 위해 성까지 도구화하는 급진 좌경세력의 상습적인 전술"이라 매도했다.
함세웅은 주보에 전후 사실을 상세히 보도하고 정의구현사제단은 8월 4일 성고문 등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부패 타락한 전두환 정권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군을 고문치사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그동안 교구 업무에 열정을 바치고 있던 함세웅을 다시 역사의 현장으로 불러냈다.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박종철군이 경찰의 대공분실 조사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하자 경찰은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위장하려고 했다. 양심적인 의사들에 의해 고문치사임이 드러났는데도 경찰간부들은 고문 하수인 2명만 구속하고 사건을 덮었다.
박종철군 고문에 가담했던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은 당시 고문 경관들과 같은 감옥(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전국회의원) 씨가 알아내 바깥의 김정남씨에게 몰래 전해줌으로써 드러났다. 처음에는 사제들이 안 나서는 것으로 얘기가 되기도 했었는데.
"박종철 사건에 대한 문건을 그해 3월부터 김정남 선생한테 받아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좀 버겁고, 핑계이긴 하지만 당시 교구에서 일하고 있어서 교회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김정남 선생이 '면책특권이 있는 야당, 김영삼씨의 통일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하기로 했다.'고 하더라. 잘됐다고 안도하고 있는데 어느날 김정남 선생이 '야당 의원이 못 하겠다고 한다. 그러니 사제단이 맡아줘야겠다'고 다시 연락해왔다. 김수환 추기경한테 얘기했더니 '1975년 인혁당사건 때 8명이 사형당하지 않았느냐, 잘못하면 이번에도 정권에서 그 경찰관들을 죽이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면서 선뜻 받지 못하시더라. 유현석ㆍ황인철 변호사와 함께 최종 발표문을 준비해 놓았지만, 최종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5월 17일 주일을 맞았다.
당시 저는 주일마다 구파발성당에 가서 미사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고영구 변호사의 부인(고 황숙자)이 김정남 선생 편지를 거기로 가져왔다. 그걸 보니까 이게 구약성서의 요나더라. 우리에게 돌아온 십자가를 피할 수가 없더라. 편지를 없애버려서 원본은 없지만, 지금도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전두환의 불의한 정권이 망하느냐 않느냐가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