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잎이 쑥쑥 올라오는 파키라. 큰 잎이 햇빛을 모두 가려서 속에 있는 잎들은 크지를 못하고 있다. 좀 잘라줘야 할 듯.
장순심
부쩍 잘 크는 식물은 파키라다. 2주 전 화원에서 한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공기정화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손가락같이 갈라진 잎과 뿌리 윗부분 줄기의 통통한 모양새가 특이한 식물이었다. 자생지인 멕시코에서는 교목으로 자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 심어 잎을 관상하는 관엽식물로 주로 키운다. 이 식물이 나에게 키우는 보람을 주었던 것이다.
유기 식물이 들어온 것은 한 달 전쯤이다. 하필 야근하고 늦게 퇴근한 그날, 집에 들어가니 남편이 조용히 화장실로 이끌었다. 화장실 세면대에 놓인 비닐봉지에는 몇 가닥 안 되는 가지 끝에 잎이 몇 개 달린 커다랗고 굵은 나뭇가지가 들어 있었다. 굵은 줄기 끝에 달린 뿌리는 뿌리랄 것도 없었다. 빈약하고 짧은 몇 가닥의 뿌리가 간신히 붙어 있었다. 뿌리도 잎도 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형 식물 같았다.
사연인 즉, 길에 뿌리째 뽑혀 깨진 화분과 함께 나뒹구는 나무(이름을 찾아보니 해피트리였다)가 남편의 눈에 들어왔고, 혹시라도 살릴 수 있을까 싶어 가져왔다고 했다. 뿌리나 줄기가 마르지 않도록 물에 담가 놓았다며 살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제 식물을 키운 지 1년 차, 식집사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사람이 알 턱이 있을까마는 남편이 가져온 것을 타박할 수 없었다.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화분을 준비해서 마사토를 깔고 분갈이 흙을 소복이 덮어 간신히 화분 모양새를 만들어 놓으니 밤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식물을 키우고 달라진 것
블로그에 처음 식물 일기를 쓰며 스스로 식집사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집사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아직은 너무 어설프고 화분도 몇 안 되지만, 우리는 매주 화분을 보러 화원에 가고 매주 식물원에 간다. 식물의 이름을 알아가고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느낀다. 마음만큼은 이미 식집사로 살고 있는 셈이다. 마음이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것도 달라지고 가족인 양 자식인 양 마음과 정성을 쏟는 중이다.
현재는 화분이 하나둘 늘며 크기도 1m가 훌쩍 넘는 것부터 작은 것까지 종류가 20여 종이 넘었다. 주먹구구식으로 매일 보고 살피고 말을 건네지만 여전히 초보, 이제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적당한 때에 맞춰 분갈이도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토분도 미리 준비해 두었고, 분갈이용 흙과 마사토, 펄라이트와 식물 영양제도 준비해 두었다.
식물을 키우니 화원은 물론이고 길거리에 놓인 작은 화분도 그냥 지나치게 않게 된다. 이름과 크기와 생육 정도와 영양 상태까지 전문가라도 되는 양 점검하고 나홀로 훈수를 둔다. 주인의 손길이 닿아 잘 관리되는 것들은 잎들이 윤기가 나고 빛을 발하지만, 버려진 듯 방치된 식물은 그들의 타들어 가는 잎에서 고스란히 아픔이 전해진다.
돌아보니 작년 봄, 남편의 암 진단과 함께 식물 키우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키우고 죽이기를 반복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새삼스럽게 용기를 낸 이유가 남편의 암 진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이었는지도. 하나로 시작해서 스무 개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키우는 순간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고, 잎을 닦고 가지를 다듬고 물 주고 틈틈이 창문 열고 닫고 하며 바삐 움직이는 손과 발이 여타의 잡념을 지워 주는 것 같았다.
어딘가로 마음을 쓰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던 순간이었지만, 식물과 함께는 괜찮았던 것 같다. 조금씩 실내 환경도 좋아지는 것 같았고, 그들이 성성한 생명력에 남편도 나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잎이 올라온 것을 목격한 아침이면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열심히 마음을 쏟으면 모든 것이 잘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주었던 것 같다.
시작이 어떤 목적이었건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이 이른바 '원예치료'의 종류는 아닐까 싶다. '원예치료'는 식물과 원예 작업, 정원 조경 등 치유적 목적을 지닌 활동을 말한다. 사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마음의 병과, 환절기만 되면 비염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을 약에서 해방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막실라리아' 화분을 들여왔다. 초콜릿 향 같기도 하고 헤이즐넛 커피 향도 나는 화분이 지금 우리 집안을 향기롭게 하고 있다. 특히 나에게는 향기가 주는 효과가 큰 것 같다. 식물을 돌보며 식물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자연의 냄새에 조급하고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유기 식물이 며칠 전 새 싹을 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