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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엔 있고, 한국 대학엔 없는 것

'살아 있는 지식'을 배우기 위해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등록 2022.06.16 10:48수정 2022.06.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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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이 되면 교수자와 학생이 의견을 나누는 장이 가득할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면 교수자와 학생이 의견을 나누는 장이 가득할 줄 알았다. pixabay

'질문'이 사치가 되는 교육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를 보며 대학 내 토론 문화를 동경했다. 교수자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상황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이를 발전시키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학창 시절엔 교사의 말을 주워 먹기 바빴고 누구보다 그 말을 잘 받아들이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교실에선 교사의 목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학생의 목소리는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됐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는 학생들의 생각을 담고 있기보단 교사들이 요구하는 '정답'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교사가 요구하는 지문이나 문제를 학생들이 소리 내어 읽을 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암기된 지식의 양과 정확성을 통해 경쟁의 우위를 결정한 입시 교육 체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것은 사치라고 여길 정도였다.   

대학생이 되면 교수자와 학생이 의견을 나누는 장이 가득할 줄 알았다. 학창시절의 수동적 학생상에서 벗어나 교수자에게 자신의 의견도 피력하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풍부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대학에선 이러한 경험은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했다. 몇몇의 강의를 제외하곤 교수자가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대부분 강의가 취하는 형식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을 전달했던 학창 시절의 교사들과 달리 대학에서의 교수자들은 파워포인트에 있는 내용을 무미건조하게 전달하는 것(읽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 역시 '교수의 주된 역할을 연구이지 강의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스스로 체화하며 자신의 삶과 연결되지 않은 죽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납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수업 중의 질문은 교수자가 질문을 요구할 때만 가능하거나 수업이 끝나고 따로 나와 질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학생들도 애초에 질문을 별로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 교육의 사례를 들며 학생들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외국의 학생들은 질문을 자유롭게 하는데 한국의 학생들은 질문을 못 한다. 한국 학생들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만 잘한다"라는 식으로 한국 학생들의 자질을 평가 절하한다.


독일의 교육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필자 역시 이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만 찾았다. 하지만 독일 교육의 경험을 통해 이는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문화와 사회 구조의 차이라는 걸 깨달았다.  

2019년 독일 대학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들었을 때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들이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질문을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든 말든 학생들은 손을 들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한다. 교수는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학생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 보다 반론을 펼치거나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또는 설명이 품지 못하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업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지금껏 경험했던 한국의 대학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 당시 이 모습이 낯설었던 필자는 그 모습을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교수님이 말하고 있는데 저렇게 툭 끊어도 되는 거야? 저런 걸 굳이 묻는다고? 왜 이렇게 과하게 질문하지? 교수님에게 잘 보이고 싶나? 나중에 따로 물어보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문화를 한국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 대학의 질문 문화에 익숙해졌고 이것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강의는 '로봇'이 만드는 시간이 아니다

학생들은 질문을 왜 던질까? 이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바람직한 질문 문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답은 간결하다. "궁금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 내용이 궁금해서 질문을 한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질문을 한다.

수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수자가 갖고 있는 지식을 다 배설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일까? 이것이 수업의 목적이라면, 교수자들 보다 더 정확한 전공 책이 있고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인터넷이 있다. 또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하지 못하거나 그들의 삶과 연결 지을 수 없는 죽은 지식만을 제공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다. 수업의 기능은 단순히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진도 빼기가 아니다.

수업 안에서 학생들과 교수자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그들만의 생각과 지식을 형성할 수 있다. 또한 학생은 교수자의 도움을 통해 확실치 않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궁금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 부분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만약 그 부분이 뒷부분과 연결된 내용이라면, 그 부분뿐 아니라 수업 전반에 손실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강의에서 질문은 얼마든지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교수자가 생각한 교육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교수자가 아니라 학생이다. 진도 빼기식 강의에선 이 목표를 교수자만 달성했을 확률이 높다. 수업의 흐름은 오로지 교수자의 손에 있고 학생들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뿐이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 되면 학생들은 교수자가 기대하는 것에 충족하기 위해 이해 대신 암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즉, 실질적인 목표는 달성하지 않는 불완전한 수업만 반복될 뿐이다.

현재 대학의 한 강의에서 교수자가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여러분들의 질문, 반응, 코멘트는 정말 중요합니다. 저를 괴롭혀주세요"라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말이 독일 대학의 문화를 절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지금껏 경험한 독일 대학은 질문을 통한 교수자와 학생들 간의 지적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학문의 장이었다.

그리고 교수자는 학생들의 질문 시간을 고려해 강의 계획을 짜는 것처럼 보인다. 강의 내에서 수많은 대화들이 오고 감에도 불구하고 교수자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분량의 파워 포인트를 적절하게 끝낸다. 즉, 질문의 시간을 자신의 강의의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또한 그 분량을 끝내지 못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교수자가 사전에 설정한 목표는 달성되지 못할지라도 그 자리엔 학생들과의 소통에 바탕을 둔 배움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의에서 학생들은 교수자가 전달하는 죽은 지식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자신의 삶과 연결함으로써 지식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강의는 생각과 감정이 없는 로봇들이 만들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생각과 감정을 가진 여러 주체들이 모인 복합적인 사건이다. 각 주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이라면 같은 교수자가 강의를 하더라도 그 강의는 복제 불가능한 사건이 된다. 하지만 질문이 부재한/허락되지 않는 강의는 누가해도 이상할 것 없는 강의가 될 뿐이다.  
#외국교육 #교육 #독일교육 #독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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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교육을 공부하는 학생. 교육을 혐오해서 교육 대학교에 입학했고 현재는 교육의 희망을 그리고 있다. 나의 궤도에서 나만의 방향, 속도로 꿈을 나아가고 있으며 평생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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