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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 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 ⓒ 가톨릭시보·작가회의
<동아일보>가 김지하의 옥중기를 실을 수 있었던 것은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직후이고 용기있는 언론인 송건호가 편집국장이어서 가능했다. 두 번째 연재는 중정에서 겪은 내용이다.
정보부 6국의 저 기이한 빛깔의 방들.
악몽에서 막 깨어나 눈부신 흰 벽을 바라봤을 때의 그 기이한 느낌을 언제나 느끼고 있도록 만드는 저 음산하고 무뚝뚝한 빛깔의 방들. 그 어떤 감미로운 추억도 빛 밝은 희망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그 무서운 빛깔의 방들. 아득한 옛날 잔혹한 고문에 의해 입을 벌리고 죽은 메마른 시체가 그대로 벽에 걸린 채 수백 년을 부패해 가고 있는 듯한 환각을 일으켜주는 그 소름끼치는 빛깔의 방들. 낮인지 밤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언제나 흐린 전등이 켜져 있는, 똑같은 크기로 된, 아무 장식도 없는 그 네모난 방들.
길위에 설까
덧없이
덧없이 스러져간 벗들
잠들어 수치에 덮혀 잠들어서 덧없이
매질 아래 발길아래 비웃음아래 덧없이
스러져간 벗들
한때는 미소짓던
한때는 울부짖던
좋았던 벗들
아아 못 돌아가리 못 돌아가리
저 방에 잠이 들면
서퍼렇게 시퍼렇게
미쳐 몸부림치지 않으면 다시는
바람 부는 거친 길
내 형제와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그 방들 속에 갇힌 채 우리는 열흘 보름 그리고 한 달 동안을 내내 매 순간 순간마다 끝없이 몸부림치며 생사를 결단하고 있었다.
못 돌아가리
한번 디뎌 여기 잠들면, 육신 깊이 내린 잠
저 잠의 하얀 방, 저 밑모를 어지러움
못돌아가리
일어섰다도
벽위의 붉은 피 옛 비명들처럼
소스라쳐 소스라쳐 일어섰다도 한번
잠들고 나면 끝끝내
아아 거친 길
나그네로 두 번 다시는
굽 높은 발자국소리 밤새워, 천장 위를 거니는 곳
보이지 않는 얼굴들 손들 몸짓들
소리쳐 웃어대는 저 방, 저 하얀 방 저 밑모를 어지러움
뽑혀나가는 손톱의 아픔으로 눈을 흡뜨고
찢어지는 살덩이로나 외쳐 행여는
여읜 넋 홀로 살아.
그 방들 속에서의 매순간 순간들은 한마디로 죽음이었다. 죽음과의 대면! 죽음과의 싸움! 그것을 이겨 끝끝내 투사의 내적 자유에 돌아가느냐? 아니면 굴복하여 수치에 덮여 덧없이 스러져가느냐?
1974년은 한마디로 죽음이었고, 우리들 사건 전체의 이름은 이 죽음과의 싸움이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죽음을 이겨내는 촛불, 신비의 고행 바로 그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이 죽음의 방, 이 죽음과의 대면의 방 속에서 나는 내 아들의 탄생을 알았다.
아아 신이여!
당신의 뜻을 이제야 비로소 알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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