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 내외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 있다. 정회원 자격은 아니지만 한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됐다.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세계적으로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한국의 나토 참여를 촉진하는 '나비의 날갯짓'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18일 뒤인 3월 14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정의용 당시 외교부장관을 '나토+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외교장관회의'에 초대했다. 5월 5일에는 한국이 나토 사이버방위센터에 가입했다. 6월 10일에는 대통령실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발표했고, 6월 23일에는 나토 주재 한국대표부 설치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렇게 최근 들어 급속히 나토와의 거리가 좁혀지다가 한국 대통령이 나토협력국 자격으로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올해엔 우크라이나전쟁이 한국·일본·뉴질랜드의 나토 참여를 촉진했다. 서쪽에서 벌어진 전쟁이 동쪽에서 나토의 영향력 확장을 도운 셈.
반면, 70년 전에는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이 서쪽에서 나토의 영향력 팽창을 촉진시켰다. 한국전쟁 중에 발행된 1953년 2월 19일자 <동아일보> 1면 좌상단에 "지중해와 중동을 공산 침략에서 방위하기 위하여 터키, 그리스 양국이 북대서양방위동맹의 동단으로서 가맹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스와 터키는 1952년 2월 18일 가입했다. 이로써 지중해와 흑해에까지 나토의 영향력이 미치게 됐다. 이렇게 되는 데 결정적 기능을 한 것은 바로 한국전쟁이다.
나토 확장 꺼리던 미국이 입장 바꾼 이유
1950년 당시의 미국과 서유럽은 소련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 관할 범위가 넓어지면 방위력이 손상될 수 있다는 등의 우려 때문에 나토 확장을 반대했다. 그랬다가 태도를 바꾼 것은 한국전쟁 발발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은 '서유럽만 지키는 것으로는 소련의 팽창을 막기 힘들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이는 나토가 북대서양을 벗어나 지중해와 흑해로까지 확장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대규모 전쟁이 나토 확장의 계기가 되는 일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진행된 보스니아전쟁 때도 있었다. 유고슬라비아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촉발된 세르비아계 대 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의 전쟁은 나토의 동유럽 확장을 촉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1991년 소련 해체 뒤에 동유럽 국가들은 나토 가입을 희망했다. 하지만, 미국이 꺼려했다. 나토 팽창이 러시아 우익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1990년 걸프전쟁 때 호전성을 과시했던 조지 부시 1세 대통령도 나토 확장만큼은 부담스러워했다. 2013년에 <역사학보> 제217집에 수록된 김봉중 전남대 교수의 논문 '탈냉전과 제국의 재편성'에 이런 일화가 소개돼 있다.
"1992년 7월 10일 헬싱키에서 헝가리 총리 안톨(Jozsef Antall)을 만난 자리에서 NATO 이슈를 먼저 꺼낸 사람은 부시가 아니라 안톨이었다. 안톨 총리는 'NATO는 유럽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기구'임을 강조하며, 유럽 통합과는 별개로 NATO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시는 이에 대한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화제를 돌렸다."
러시아를 우려해 나토 확장을 신중히 대하는 태도는 후임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서도 나타났다. 그 역시 나토 확장이 가져올 러시아 우익의 세력 확장을 두려워했다. 그랬던 그의 입장을 바꿔놓은 것이 보스니아전쟁이다. 이 전쟁이 격화하고 미국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자, 미국은 나토를 확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1999년에 체코·폴란드·헝가리가 나토에 들어간 것은 그런 전환의 결과였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지중해·흑해로, 보스니아전쟁을 계기로 동유럽으로 확장됐던 나토가 지금은 태평양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속적 팽창의 결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명칭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 됐다. 지금은 북반구조약기구라는 명칭으로도 부족하다. 남반구의 뉴질랜드·호주까지 협력국이 되었으니 더 이상 '북'이라는 방위로 나토를 한정하기 힘들게 됐다.
나토의 팽창은 태평양뿐 아니라 발트해 주변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가입을 신청한 5월 18일 이전에도 그랬다. 유럽 시각 4월 28일에는 스웨덴·핀란드를 나토 협력국 자격으로 참가시키는 21세기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군사훈련이 개시됐고, 6월 5일에는 양국을 참여시키는 '발톱스 22'라는 합훈이 시작됐다.
세계 주요 지역에서 전개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 왕원빈 대변인은 한국·일본·뉴질랜드·호주의 나토 정상회의 참가를 두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북대서양의 지리적 범주가 아니다", "아태 지역 국가와 국민은 군사집단을 끌어들여 분열과 대항을 선동하는 어떤 언행에도 결연히 반대한다" 등의 발언으로 경계심을 표시했다.
미국이 나토를 태평양 쪽으로 확대시키는 것은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키이우와 모스크바도 가깝지만, 베이징과 서울도 가깝다.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친미국가 수도는 서울이다. 나토의 영향력이 베이징에 근접하게 되면 중국도 러시아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으므로,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반응을 더욱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