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전북 순창군 쌍치면 한 콩밭에서 풀메기를 하고 있다.
최육상
"대학생들이 우리 마을에 농활을 왔는데 취재를 와 줄 수 있나요?"
지난 6월 29일 오전, 주민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호기심이 동했다. 그날 오후 3시 30분 무렵 전북 순창군 쌍치면 운암마을 허성(48)씨 농가의 드넓은 콩밭에 도착하니 대학생들이 풀메기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주인공들은 전주대학교 역사동아리 '역사랑' 회원들이었다.
콩밭 주인 허성씨는 "어제 학생들이 쌍치에 농활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해서 오늘 아침부터 제 밭일을 도와주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일손이 부족한 시기에 이렇게 도움을 주고, 또 젊은 학생들이 오니까 마을에 활력도 생겨서 이래저래 좋다"고 반가움과 고마움을 함께 전했다.
역사에 관심 많은 대학생들의 농활
농활대 대장을 맡은 문한솔(4학년) 역사랑 회장은 '어떻게 순창으로 농활을 오게 됐느냐'는 물음에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저희가 농촌활동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순창이 여성농민인 오은미 전북도의원이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소속(진보당)으로 당선된 지역이라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오은미 의원한테 연락을 드려서 소개를 받았어요. 저희가 역사동아리인데, 숙소 마을회관 옆에 전봉준 기념관도 있고, 또 빨치산 활동 무대기도 해서 여기(순창군 쌍치면)로 오게 됐어요."
지난해 역사동아리를 만들었다는 문 회장은 "작년엔 남원농민회에 연락해 남원에서 처음 농활을 했고, 이번에 두 번째 농활을 순창으로 오게 됐는데 학생들이 '순창이 정말 깨끗하고 흙냄새도 좋다'고 만족해해서 앞으로도 순창으로 농활을 계속 올 생각"이라면서 "역사동아리 회원 30명 중에서 14명이 농활을 왔는데 저하고 운영진 2학년 5명을 뺀 나머지 8명이 농활을 처음 해 보는 1학년 학생들"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교의 역사동아리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최강연 1학년 학생은 "원래 중고등학생 때부터 역사 수업 듣는 것도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다"며 "저희 동아리는 꼭 역사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활동과 캠페인 같은 거를 할 수 있어서 되게 좋다"고 동아리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땅·감성·감정·인문학·상상력… 농활 하며 다양한 경험
학생들에게 이틀 동안 경험해 본 농활 소감을 들어봤다.
"농사일을 많이 안 해 봤지만, 시골집에서 할아버지할머니가 농사를 지으셔서 잡초 뽑기, 고추 따기, 마늘 뽑기는 해봤어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땅에서 느껴지는 감성과 농활 하면서 인간의 감정,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해 보고 싶어요." -이지혜(고흥·산업디자인학과 1학년)
"신체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예전에 고구마 캐본 적은 있는데, 농사 돕는 건 처음이에요. 동학농민운동은 잘 알고 있었는데, 전봉준 기념관이 순창에 있는 건 처음 알았어요." -최강연(전주·상담심리학과 1학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는 이번에 처음 농촌 일을 했어요. 이게 콩밭이잖아요. 저희가 흔히 먹는 콩인데 이렇게 어렵게 나오는 구나라고 정말 느끼게 되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걸 해보니까 힘들긴 하지만 재밌기도 해요. 기회가 된다면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농활을 하고 싶어요." -백송이(서울·역사문화콘텐츠학과 2학년)
한 학생은 "오전보다 오후가 확실히 나아요, 작업 속도가 빨라졌어요"라면서 "짧은 기간 안에 익숙해지는 게 재미있네요"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농사일 며칠 더 하고 가면 되겠다'고 권하자 "그건 안 돼요"라고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라 주위 학생들을 웃게 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할머니가 장수·진안 시골 분이셔서 가끔 풀 뽑기, 고구마 캐기, 고추 따기, 도라지 캐는 거 도와드렸어요.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싶어서 공부를 많이 해야죠. 전시회나 이런 것들도 많이 보러 다녀야 하고요. 내년에도 기회가 되면 농활을 하고 싶은데, 군대를 가게 될 것 같고, 군대를 다녀오면 복학생이라 활동이 어려울 것 같아요." -박진석(전주·역사학과 1학년)
기자는 박진석 학생에게 대학생 때 농활 경험을 빗대 조언했다.
"복학생 때 농활을 돕는 방법이 있어요. 후배들이 농활을 가잖아요. 먹을 거 사서 주고 오면 돼요. 저 때는 복학생 선배들이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와서 먹을 거 주고 갔어요. 자기가 있으면 후배들이 불편하다고 먹을 거만 주고 바로 돌아갔어요."
박진석 학생은 "땀 흘리고 일한 뒤 평가하면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었는데,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다들 일찍 잠들었다"면서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동네 형님들하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떠나간 시골 농촌
허성씨는 "학생들한테 '농활을 하려면 한 1주일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1주일 정도 잡으려고 하다가 장마 기간이 겹쳐서 2박 3일로 짧게 정했다'고 그러더라"면서 "학생들이 내일 오전에 일하고 돌아간다고 해서, 오늘 저녁은 토종닭 몇 마리 잡아서 백숙에 순창막걸리 한 잔씩 할 계획"이라며 웃었다.
허성씨는 "저까지 8남매인데, 5명은 외지에서 살고 3명이 순창에서 어머니 모시며 살고 있다"면서 "저는 한 번도 순창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 학생들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젊은이들이 떠나간 농촌의 씁쓸한 풍경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역사동아리 '역사랑'은 '역사를 사랑하고 함께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문한솔 회장의 바람대로, 전주대학교 역사랑 회원들은 내년에도 순창으로 농활을 와서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