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진정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이 서있어 반가웠다. '수산봉수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내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 - 기자 말
▲ [현장 영상] 거칠어진 제주 바다... 9월 5일 오후, 일출봉 앞 광치기 해변 9월 5일 오후 3시 30분께, 태풍 힌남노의 영향을 받은 제주 일출봉 앞 광치기 해변의 모습이다. 일출봉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 이봉수
자연의 위력 앞에 서면 인간은 얼마나 미약한가? 태풍 힌남노가 제주를 직격할 기세여서 사라호(1959년)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와룡국민학교는 아버지가 교감으로 재직하다가 사라호 태풍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곳이다.
초가였던 사택이 통째로 날아갔다. 만 다섯 살이던 내가 기억하는 사라호는 주위가 온통 밤처럼 새까매지면서 시작됐다. 아이들이 엄마 곁으로 몰려들자 엄마는 남포불을 켰다. 비가 위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옆으로 온다고 생각한 순간 폭풍우가 문종이를 찢고 들이닥치더니 집 전체를 날려버렸다. 잠깐 기절했던 듯 찬 비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와 우리 오남매가 흙더미 위에서 떨고 있었다. 여동생은 흙더미에 묻혔는데 엄마가 정신없이 맨손으로 이곳저곳을 헤집어 구해냈다고 들었다.
학교가 통째로 날아가면서 교장 선생님은 즉사하고 교감인 아버지는 머리를 크게 다쳤다. 불어난 하천을 헤엄쳐 건너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사택으로 달려와 "애들 어떻게 됐노"를 외치던 아버지 모습이 선연하다. 아버지는 사경을 헤매는데 신작로에는 미루나무가 이리저리 쓰러져 안동읍에서 오던 앰블런스는 사이렌만 울려대며 허둥댔다.
"태풍이 다행히 울릉도 근해로"... 이런 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