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조성진 리사이틀
은주연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헨델의 바로크 음악이 너무도 잔잔하게 시작되었다. 흡사 옥구슬이 건반 위를 굴러가는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공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움직임을 멈춘, 그 옥구슬 소리가 더 돋보였던 것은 관객석의 완벽한 고요 때문이었다. 설렘과 흥분과 기대가 섞인 적막.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리사이틀의 성격상, 연주될 곡들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고 갔다. 곡과 작곡가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음악이 귀에 익도록 많이 많이 들었다. 조성진이 눈앞에서 연주를 하는데 무슨 걱정이겠느냐마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내 자리가 불행히도 오른쪽 블록의 맨 끝자리였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연주자의 모습과 손가락과 건반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자리다. 하지만 그 자리라도 감지덕지해야 했기에 소리와 음악에 최대한 집중해 보기로 마음먹었었다. 물론, 조성진이 입장하고 건반에 손을 올리자마자,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알았지만 말이다.
이번 리사이틀의 주제는 변주곡이었다. 변주곡이란 어떤 주제(테마)를 설정하고 그것을 여러 가지로 변형하는 기법으로 주제와 몇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곡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변주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변형되었긴 했지만) 익숙한 테마가 반복적으로 들려오니, 음악이 지루하지 않고 좀 더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론 연주자들에게는 그 변주 하나하나가 엄청난 테크닉적 어려움으로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헨델에 이어 브람스의 변주곡이 연주되었다. 아, 이 가을에 브람스라니.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된 브람스, 이름만으로도 이 가을 낭만적인 사랑에 가장 어울리는 낭만주의 작곡가다. 브람스 하면 슈만과 클라라가 자동으로 떠오를 만큼 그들의 사랑은 극적이고 애틋하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그리고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스승의 부인이자 열네 살이나 연상인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의 이야기가 워낙 극적이고 아름다워, 나의 관심은 늘 브람스를 향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람스의 사랑 자체가 낭만적이다.
슈만이 정신병으로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사랑하던 클라라와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끝까지 클라라의 곁을 지켜준 남자. 클라라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으면 클라라가 죽은 후 일 년 뒤에 세상을 떠났을까. 죽음마저도 낭만적인 그다.
음악은 차치하고, 이런 브람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 그동안 슈만에게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조성진의 손끝에서 피어난 슈만은 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던가. 조성진의 손끝에서 피어난 슈만은 내게 더 이상 이전까지의 슈만이 아니었다.
슈만에게 빠진 채 시작하는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