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 드문 '만년필 에세이'『 제 만년필 좀 살려주시겠습니까?』
김덕래
표지 한가운데 사진은, '만년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워터맨의 스틸 펜촉입니다. 세월을 몸으로 받아내 여기저기 벗겨지긴 했지만, 기능상으론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표지 앞면 사진과 후면의 글도 서로 이어지게끔 배치했습니다.
요즘은 생략하는 분들도 많던데 저는 사진도 욱여넣었고, 간략히 남겨야 센스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저자 소개도 가능한 자세히 썼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만년필 수리공이라니.. 어떤 사람일까? 궁금할 것 같았어요. 머리말과 맺음말을 '작가의 말'로 묶어 싣는 경우도 많지만, 저는 굳이 나눠 따로 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게 3년간 써온 33편의 글을 엮은 책이 나왔습니다. 대나무가 생장 시기에 맞춰 자라다 더 높이 올라가려면, 잠시 숨을 고르며 매듭을 지어야 한다지요? 그래서 대나무의 진정한 강함은 길게 뻗은 높이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단단한 매듭에 있다고도 합니다. 바탕이 탄탄해야 휘둘리지 않고 솟구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책은 저의 매듭입니다.
이 책엔 제가 그간 만 자루가 넘는 만년필을 접한 내용과 개인적인 감상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제 원래 꿈은 시인이었습니다. 시인도 보기 힘든 업(業)이지만, 만년필 수리공은 더더욱 그렇지요. 저는 꽤 요즘 드문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만년필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제가 가지 못한 시인의 길을 슬며시 바라보는 시집이며, 품은 속내를 다 적은 일기장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