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도스' 매장
언스플래쉬
런던에서 오래 연애를 했던 한 친구와 '난도스'라는 유명 치킨 체인점을 간 적이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끼니를 해결할 마땅한 곳이 없었고 마침 그곳에서 대세에 따라 비건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치킨을 먹는 이의 모습을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던 나는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다. 공존과 유연함도 좋지만 내게는 조리된 치킨의 이미지 자체가 너무 적나라해 왜 그곳에 가는 것이 괜찮을 거라 으레 짐작했던 것인지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사흘에 걸쳐 그 경험을 상대에게 어떻게 공유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매일 밤을 울었다.
데이트 초기 그는 주변에 '비건'인 사람이 나뿐이어서 우리의 만남이 걸림돌이 될 것이 있다면 아마 그 때문일 거라며 우려를 표했었다. 그렇기에 그날의 경험으로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었기에 두려웠다.
결국 며칠 후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울면서 얘기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앞으로 가능한 내 앞에서는 육류 식사를 지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양육자에게도 해본 적 없는 요청이자 제안을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그는 정말 육식을 하고 싶으면 나와 데이트하지 않는 때에 얼마든지 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흔쾌히 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8개월에 거쳐 만나는 동안 자신의 집 냉장고에 나조차 듣도 보도 못한 비건 제품들을 사들여 채우기 시작했다.
비건인 나도 비건이 아닌 그도 모두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노력과 정성에 너무 취한 나머지 때로는 그 친구와의 만남보다도 그가 보내온 문자 중 냉동고의 신상 비건 아이스크림 사진을 보고 더 흥분을 표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비건인 나란 사람과 그와 함께 따라오는 부가적인 문화 접근성에 대한 낯선 경험이 내게는 반대로 작용한다. 비건인 아닌 사람과 그들의 식문화/소비문화를 마주하게 될 때 그들이 폭력에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거친, 익숙한 방식을 따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전히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까지는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의 감정이 허용 가능한 부분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삼겹살집에 출입하지 않은 지는 10년이 넘었고 이제는 누구도 나를 바비큐 파티에 초대하지 않지만 어느 채식 식당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연락해온다. 나와 내 주변인들은 이렇게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들을 발견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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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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