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된다

[아프면 쉴 권리④] 누구에게나 보장될 수 있는 상병수당제도가 필요하다

등록 2023.03.09 09:46수정 2023.03.0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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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쉴 권리’는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및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에 관한 협약’의 권고사항이며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OECD국가가 보장하는 최소한의 보편적 권리입니다. 하지만 한국 노동자들은 아프면 쉬기보단, 생계와 고용 걱정부터 해야 합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시작부터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을뿐 아니라, 정부가 제시하는 노동 및 보건의료정책들은 노동자 건강을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아프면 쉴 권리' 연속기고를 통해 네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룹니다.[기자말]
 아프면 쉴 수 있어야 한다.
아프면 쉴 수 있어야 한다.Unsplash
 
노동자의 건강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청장년의 운동 부족, 흡연율 증가, 고위험 음주율 증가 등 건강행태는 더욱 나빠지고, 건강 불평등 수준과 암 등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20~40대 대장암이 세계 최고의 발병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50대 이후 위험요인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대장암이 젊은 층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불안정하고 장시간의 질 나쁜 노동이 만연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2021년 기준 OECD 국가 중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다음으로 길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1300~1500여 시간인 것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긴 시간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52시간에서 총 69시간까지 연장근무가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대신 휴가 기간을 길게 가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은 그 자체로 인체에 위해한 과중 노동에 해당하며, 긴 시간 속에는 야간노동을 포함하게 되기 때문에 인체에 여러 가지로 유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

기본적으로는 아프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적당한 시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 참고 버티며 일하다가 건강이 크게 위협받지 않도록 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그나마 '상병수당제도'(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 혹은 부상으로 일할 수 없을 때 치료에 집중하도록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불안정하고 질 나쁜 노동이 저출생의 기본 원인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합계출산율은 2.1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2006년부터 15년 이상 380조 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며, 이런저런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계속 갱신하고 있다. 이렇게 낮은 출산율이 계속 심화되는 이유는 다양한 요인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가장 근본적으로는 노동과 소득이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하위층에서 출산가구 수가 가장 적고 출산율 하락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자기 한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마음 편하게 거주할 공간도 확보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결혼해서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출산할 엄두를 낼 수 있을 것인가? 낮은 출산율 문제의 원인과 해법은 아주 근본적이고 단순한 것에 있다.


아주 특별하고 뾰족한 수와 편법으로 해결될 수 있기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바로잡는 결단과 실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제도 취지에 맞는 제대로 된 상병수당 도입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기간산업의 빈 곳을 채워 주고 주요한 사회 구성원이자 경제 동력이 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의 문제도 관심있게 들여다 봐야 한다.

상병수당 제도는 전체 가입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상병수당 도입은 건강보험급여 중 소득보장급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주요 재원이 국가의 세금이 아니고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낸 건강보험료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가입자 전체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시민을 위한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마땅하다. 가입자가 낸 건강보험료의 운영에 대해 국가권력이나 일부 정치 관료, 전문가 중심의 의견으로 제도를 좌지우지하는 현재의 비민주적인 거버넌스도 개선되어야 한다.

1단계 시범사업이 보장 수준이 약하고, 다양한 사각지대, 짧은 보장기간, 긴 대기기간 등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는 비판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2단계 시범사업은 이를 적극 반영하여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보다는 한술 더 떠서 소득하위 50% 이하 노동자에게만 적용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게다가 외국인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문제까지 있다.

1단계 사업에서도 대한민국 국적자를 기본 대상으로 하고 일부 구성원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포함하였는데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후퇴하였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건강보험가입자로서 건강보험료를 정당하게 내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나 보장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상병수당제도 필요

상병수당제도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사회 공동체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인식되었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2025년 제도도입을 목표로 하여, 현재 2단계 시범사업을 예정하고 있다. 1단계 시범사업이 보장액과 보장 기간이 짧고, 대기기간이 2주까지 되는 등의 여러 한계가 있었음에도 일부 효과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점이 있다.

현재는 건강보험 가입자 중 직장가입자를 기본대상으로 하며, 일부 일용직과 특수고용직을 포함하기 위해 고용보험 가입자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정규노동이 아닌 다양한 경계의 노동과 고용 형태에 속한 노동자들도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게 문턱을 더 낮추어야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을수록 아프면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플 때 제때 제대로 치료받고 쉴 수 있어야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하다. 상병수당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보장 수준도 충분해야 하고, 제도 이용이 편리하도록 문턱과 장벽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시범사업부터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제도 도입의 취지를 망각하고, 목표와 방향을 상실한 채 제도가 도입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 도입되는 이 제도는 아파도 직장을 잃을까 봐, 소득이 없어질까 봐 제대로 쉬지 못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 없도록 소득, 건강보험 가입유형, 고용 형태, 젠더 문제 포함 노동의 형태, 국적에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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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는 시민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건강권 시민운동단체입니다. '건강'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임을 선언하며 2003년 4월 출범했습니다. www.konkang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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