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선택 한평정책연구소 글로벌외교 센터장
이영광
위안부 합의와 비슷하면서도 달라
- 정부가 지난 6일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발표해서 야당과 피해자 등의 반발이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민감한 내용 포함한 외교 협상은 국민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추진하는 것이 표준이죠. 그러나 이번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조성되지 않은 채 정부가 전격적으로 협상을 종료하고 일방적으로 강제동원 문제 해결책을 발표한 상황입니다. 협상 수준으로 보면 백기 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민적인 굴욕감을 자극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두 가지 쟁점이 있었는데 하나가 일본 전범 기업이 배상금 모금에 참여할 거냐 말 거냐였죠. 또 하나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과 관련해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느냐였습니다. 일본은 두 가지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양보안을 발표했기 때문에 백기 투항이라는 평가 혹은 일본이 완승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2015년 말에 위안부 합의가 있었잖아요. 그때도 비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그때와 강제동원 배상 문제 비교하면 어떤가요?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어요. 비슷한 부분은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한·일 갈등 사안에 대해 일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점은 문제의 구조입니다. 강제동원 문제는 책임자가 한국 정부고,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책임 문제가 달라진 이유는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 때문입니다. 그때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협상 대표들이 협상해서 합의 본 바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이 나중에 달라지면서 오늘날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의 경우 1965년에 다루지 않았고 합의된 바도 없습니다. 한·일 청구권 협상이 합의된 이후에 새롭게 문제가 발견된 거예요. 그래서 그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습니다."
- 2018년 판결은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것 아닌가요?
"당시 대법원은 개인 청구권이 아직 살아있다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1965년 한·일 협정 때문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청구권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한국의 각급 법원에서 채택된 바도 있습니다.
논란 속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한국 정부에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1965년 합의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관련 문제는 한국 정부가 떠안았는데, 일본 전범 기업이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기 때문에 행정부는 해당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을 따를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어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던 중에 이번에 갑작스러운 사태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 여권은 이게 문희상 국회의장 안이었다고 하는데.
"제3자 변제는 2019년에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방안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문희상 법안도 일본의 전범 기업이 배상하는 건 현실적으로 관철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기금 마련하는 방안을 수용했습니다.
일본의 전범 기업과 한국 기업 중에서 일본 청구권 자금 받아서 도움 받은 기업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마련해서 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안입니다. 이 방안은 일본의 전범 기업이 직접 배상금을 내지 않아서 일본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는 일본 기업이 돈을 냈기 때문에 배상금을 받았다고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 하지만 국민이 받아들이기에는 일본이 잘못한 건데 왜 한국이 배상하느냐는 생각이 있어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1965년에 일본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실상 배상금에 해당하는 각종 명목의 돈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것을 한국 정부가 일괄적으로 받아서 대신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가 책임 지는 방식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 정부 이름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일본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위반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됐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한국 대법원이 2018년에 다르게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행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 결과도 준수해야 하고, 대법원 판결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충족하는 제3의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게 제3자 변제 방식입니다. 제3자 변제 방식은 그래서 합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일본의 전범 기업이 제3자 변제 방식에 따른 기금 모금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3자 변제 방식을 채택한 의미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 지금 일본 기업은 배상하려고 하지만 일본 정부가 막았다는 주장도 있더라고요.
"2018년 10월에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해당하는 기업이 미쓰비시하고 일본 제철 두 개입니다. 그 회사들은 위로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판단한 결과 그렇게 되면 일본의 강제동원 문제가 불법적인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어서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합니다."
- 강제동원은 불법 아닌가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우리 한국 국민이 보는 인식은 상당히 거리가 있어요. 일본 정부 판단은 1945년 패전 직전 2~3년 동안에 전시 총력 동원 체제 속에서 일본 국민에 대한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인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에 대한 강제동원이었고 당시에 조선은 외국이 아니라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에 대해 우리는 1910년에 강제 병합이 된 부분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고, 조선이 일본의 일부라는 주장 자체를 거부하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거예요."
- 그럼 윤석열 정부는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한국과 일본이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해서 할 일이 많은데 강제동원 문제 때문에 관계 개선도 안 되고 협력도 안 되니까 이 문제를 빨리 끊고 가자는 그런 입장이라고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