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2021년 2월 4일 찬성 179표, 반대 102표로 가결했다. 국회가 현직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를 의결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부산고등법원에 펄럭이는 법원 깃발에 그림자가 드리운 모습.
연합뉴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저자는 문재인 정권이 검찰에게 적폐청산 수사의 주도권을 준 것을 그 첫 원인으로 꼽는다. 적폐청산 수사에 올인하느라 '정권 초반'이라는 최적의 타이밍을 놓쳤고, 검찰의 과도한 힘은 '직접 수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윤석열의 요구대로 직접 수사를 전담하는 특수부를 확대해 검찰의 힘을 '역대급'으로 키워줬다는 것이다.
적폐 수사에 동원한 수사 방식도 문제로 지적한다. 유죄추정과 피의사실공표, 무분별한 압수수색 등이야말로 검찰의 대표적 적폐이자 개혁대상임에도 정적을 제거해주는 '칼맛'에 취해 윤석열 사단에 힘을 몰아주었다. 그 바람에 윤석열 검찰은 정치검찰에 만족하지 않고 정국을 직접 주도하는 '검찰정치'로 나아갔고, 검찰개혁의 실패는 검찰국가라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
언론의 책임도 지적한다. 진보언론도 '검찰 받아쓰기'와 '검찰발 단독'에 오랫동안 길들어진 채 검찰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해, '언론플레이'에 능한 윤석열 사단이 제공하는 검찰발 단독 기사를 덥석덥석 받아썼다는 것이다. 조국 수사를 계기로 한 데스크의 뒤늦은 각성은 취재 기자들에게 '불순한 의도'로 의심받았고 이후 국면에서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적폐수사를 한 것 자체가 문제였을까?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을 내세워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정적'으로 대했다."(73쪽), 이명박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8년 3월 22일은 "친노·친문 진영의 숙원이 해결된 순간"(78쪽),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적폐청산은 문재인 대선 후보의 경선 전략일 뿐 박근혜 탄핵에 동의한 국민들의 공통된 요구와 거리가 멀었다."(119쪽), "적폐청산은 국민을 편 가르기 시작했고, '국민통합'을 공허한 말장난으로 만들었다."(120쪽)는 등의 평가를 보면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 대한 평가도 혹독하다. 저자는 검찰이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이후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진정한 정의의 사도'로 등극"하려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법원행정처 고위간부들을 "사냥감"으로 삼았다고 본다.
공소장을 법률문서가 아닌 한편의 소설로 비하한 양승태의 진술을 인용하며, 무차별적인 압수수색과 피의사실공표 등으로 화력을 쏟아부었음에도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권과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은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국정농단과 탄핵을 통과한 국민들의 당연한 바람이었고, 이를 받아안은 새 정부의 절실한 과제였다는 점, 관련자들의 혐의가 권력 사유화와 남용, 정경유착 등 하나 같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범죄였다는 점, 촛불이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불가역적으로 정상 국가로 전환하게 하는 근대성의 문턱을 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구체제의 청산이 필수라는 점에서 적폐청산 수사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검찰에게 지나치고 의존하고 힘을 실어준 탓에 검찰 권력을 근저에서부터 혁파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으며, 검찰의 반발을 무릅쓸 만큼 강력한 개혁의 추동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어쩌면 검찰공화국은 윤 대통령에 의해 구축된 것이 아니라 적폐 청산을 국정 과제의 최우선 순위에 놓으면서 개혁의 대상인 검찰을 개혁의 최고 주체가 되게 한 문재인 정부에 의해 이미 완성된 것은 아닐까?
쉽지 않았겠지만 경찰이 수사를 주도하고 검찰은 공소기관으로서 법리 검토와 수사의 적법성 통제에 집중해 협업하는 시스템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검찰 수사를 최우선으로 두기보다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규명과 정치·사회적 대개혁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의 평가도 동의하기 어렵다.
고위법관 출신이기에 가능한 재판지연 전략 탓에 재판거래 의혹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 사법농단에 대한 잇단 무죄판결은 대법원장 등에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있으니 권한 남용도 없다는,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에 대한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 탓이라는 점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에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규명, 징계, 탄핵 등 책임 추궁이 없었다는 점과, 위계적·관료적 사법구조를 생산하고 지속시킴으로써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위험을 대폭 증가시키는 사법과 행정의 일원체제 개혁을 위한 노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인사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정권 초기에 검찰개혁 의지가 강한 인물들이 중용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검찰 출신인 박형철,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인 홈플러스를 변호한 이인걸 등이 민정수석실에 임용되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참모가 아닌 윤석열의 참모 역할을 한 윤대진 검찰국장이 중용되어 검찰인사는 윤대진-박형철 라인에 포획되어 윤석열 입맛대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최대의 인사 실패는 검찰주의자로서 대검의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특수부 검사들의 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검찰의 기득권 수호에 적극적이었고, 측근과 검찰을 적극 비호하는 이중기준을 적용했으며,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사주를 사적으로 만나 등 정치적 야심이 많았던 윤석열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의로운 검사로 치켜세우고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검찰 권한 강화하려는 시도 저지가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