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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 생겨난 나무 3천여 그루

[신혼부부 나무심기 참가기] 식목일에 산불교육도 필요

등록 2023.04.04 17:07수정 2023.04.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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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인해 망가진 숲이 복구되려면 몇 년이 필요할까?'


퀴즈의 정답을 알겠는가. 나무와 숲을 좋아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숲에 관한 지식을 잘 아는 이를 만나기는 어렵다. 나무를 심어본 이를 만나기도 어렵다. 매년 4월 5일 식목일은 찾아오지만 부끄럽게도 나무를 심어본 적은 없다. 화분 분갈이를 하거나 새로운 화분에 번식을 시켜본 경험은 있으나 종자나 묘목을 심어본 적은 없다. 숲을 좋아한다면서 인테리어를 식물로 꾸미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멋쩍게 느껴진다.

평소 아내는 퇴근하면 소파에 누워 쉬기 바쁘다. 그러던 아내가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PC 앞에 앉아 모니터창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며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바로 '신혼부부 나무심기' 활동 신청서였다.

아내는 이미 문장의 마술사였다. 몇 해 전 청첩장 문구까지 인용하며 정성껏 신청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선정. 운과 아내의 마술이 합해져 인생 34년 차에 처음으로 나무를 심게 되었다.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는 1985년에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39년 차다. 숲과 사람의 공존을 사회에 제안하는 숲환경 캠페인의 일환이다. 신혼부부 나무심기뿐만이 아니라 숲조성 캠페인 등 나무를 심는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활동으로 대체되었던 신혼부부 나무심기는 4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재개되었다. 올해 신혼부부 나무심기에서는 총 2만4100여 그루를 신혼부부 108쌍과 각 분야 사회 리더,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총 300여 명이 함께 심었다.


오전 7시 30분 과천 서울대공원역에서 모여 강원도 동해시로 향했다. 나무심기라는 의미 있는 활동도 좋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좋은 봄볕 아래 바다로 나들이 가는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동해시로 향했던 이유가 바다 때문은 아니다. 

지난해 3월에 강릉시와 동해시에 걸쳐 발생한 대형 산불 피해 때문이다. 오랫동안 가꿔온 숲이 유실되었고 신혼부부 나무심기는 이를 복원하고 가꾸는 데 힘을 보태는 과정의 일환이다. 
 
 산불 피해로 인해 그을린 나무의 흔적이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나무는 베어진다. 한편 피해목을 모두 베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산불 피해로 인해 그을린 나무의 흔적이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나무는 베어진다. 한편 피해목을 모두 베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이현우
 
이동 중에는 부부소개, OX퀴즈, 산림과 산불에 관한 영상 교육이 이어졌다. OX퀴즈와 영상 교육을 통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치명적인 산불 피해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신혼부부 나무심기 시청각 교육 영상에 따르면 빼곡했던 숲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년, 생태적 안정 단계에 이르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100년이라고 한다. 나들이처럼 나선 마음 가짐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면서 나무 심기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워졌다.

드디어 '나무를 심어본 자'가 되었다

4시간 남짓 이동하여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주최 측은 나무 심기의 중요성과 의미를 힘주어 이야기했다. 이어 벚나무와 소나무 심는 방법을 교육했다. 

자칭 '나무심기 일타강사' 윤도현 강릉생명의숲 사무국장은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다. "제게 사람은 나무를 심어 본 자와 심어보지 않은 자로 나뉩니다. 이제 여러분은 나무를 심어 본 자가 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청중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교육을 마친 뒤 점심식사를 하고 식재지로 이동했다. 조별로 구역이 나뉘었고 비탈진 산중턱에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1년 전 산불의 상흔이 곳곳의 나무에서 보였다. 산중턱의 오르자 헐벗은 산의 풍경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산불 피해로 헐벗은 산의 풍경과 산 비탈길에서 나무를 심는 참여자와 자원봉사자
산불 피해로 헐벗은 산의 풍경과 산 비탈길에서 나무를 심는 참여자와 자원봉사자이현우

1.8m 간격으로 나무를 심었다.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임무는 조선 괭이로 열심히 땅을 파는 거였다. 금세 땀이 나기 시작했다. 참여한 신혼부부는 즐겁게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사진도 찍었다. 

어느새 스무 그루를 다 심었다. 산중턱에서 산 아래로 내려와 솜털처럼 보이는 작은 묘목들이 심긴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이날 신혼부부 한 쌍당 스무 그루씩 심었다. 임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심은 나무까지 약 3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는 벚나무로 계산하면 1ha(100m x 100m)에 해당한다. 언제쯤 울창한 푸른 숲을 이룰 수 있을까. 언젠가 다시 이곳에 찾아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를 주최한 이 기업은 국내 화장지를 비롯한 생활용품 제조사다. 화장지는 나무를 베어 만들어진다. 판매하는 제품이 대부분 일회용품이라는 지점에서 '그린워싱(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라는 뜻의 용어)'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요즘 환경 문제와 기후위기로 인해 'ESG경영', '지속가능한 기술과 발전'이 기업계에서는 대세다. 저마다 재활용, 저탄소, 탄소중립이라는 말로 치열하게 홍보한다. '우리 제품 사주세요'라는 목소리가 더욱 큰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많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환경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반면 신혼부부 나무심기 캠페인은 38년 간 진행해 왔다는 점에서 무척 감동적이었다. 38년 전부터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졌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진정 지속가능한 지구를 생각한다면 소비를 조장하는 일을 멈추고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데에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의 움직임 아닐까. 간단한 경제 이론이다. 수요(소비자)가 있으니 공급(기업 제품)이 발생한다. 한 기업이 공급을 줄인다 하더라도 후발 기업이 그 공급량을 대체할 것이다. 다시 말해 수요를 절대적으로 줄이는 게 중요하다. 한 참가 부부는 친환경적 노력을 소개하는 시간에 "소비를 줄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무를 보며 고맙다는 마음으로는 부족하다. 화장지나 물티슈보다는 손수건이나 행주를 사용하고, 일회용 컵보다는 텀블러를 사용하고, 일회용 생리대보다는 면생리대를 사용하는 게 좋겠다. '소비를 줄이고 친환경적 노력을 더욱 해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식목일에 나무심기와 산불교육 병행해야
 
 신혼부부 나무심기 참여자가 2년 된 소나무 묘목을 심는 모습
신혼부부 나무심기 참여자가 2년 된 소나무 묘목을 심는 모습이현우

​​​​​나무와 산불 그리고 환경에 대한 생각과 실천으로 하루를 꼬박 채우자 고속도로변과 도심 내 가로수의 잘린 모습이 팔이 잘린 사람 같아 보여 속상했다. 다시 새순이 돋고 자라난다고 인간의 편의만을 위해 싹둑 잘라내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자연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주변 나무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식목일을 앞둔 4월 2일, 서울 인왕산 자락과 충남 홍성 등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4월 2일 22시경 기준으로 진화 중인 현장만 9곳, 진화완료된 현장이 24곳. 나무를 스무 그루 심고 왔지만 스무 군데가 넘는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꾸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2012년~2021년 화재 원인 통계
2012년~2021년 화재 원인 통계산림청

도대체 왜 매해 산불이 발생하는 걸까? 자연적으로 산불이라도 나는 걸까?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산불의 원인은 입산자 실화, 논밭 소각, 쓰레기 소각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의 부주의나 고의적인 방화로 불이 난다. 전문가들은 낙뢰 등으로 인한 산불 화재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산을 등산할 때였다. 젊은 커플이 등산로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다가와 "공원 전 지역은 금연구역입니다"라고 전하자 담뱃불을 껐다. 자연의 이로움을 얻으러 가면서 자연을 해하는 모습이 혹시 자신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무심기 후 산의 풍경
나무심기 후 산의 풍경이현우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올해는 나무 심기와 함께 산불에 대한 교육을 전국민적으로 하는 건 어떨까. 단순히 보고 듣는 것보다는 나무 심기와 함께 진행되면 좋겠다. 우리가 심은 2년 된 소나무 묘목은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도심과 숲에서 흔히 보이는 두꺼운 나무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지킨 걸까.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늘 그 자리에 있어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나무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나무심기 #신혼부부나무심기 #동해시산불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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