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를 신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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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귀던 시절, 남편은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오면 한국의 좋은 곳을 많이 구경시켜 주고 싶었지만, 나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인지 덜컥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감기약에 부작용이 많아서 한의원을 방문했다.
같이 한의원에 도착해서 으레 그렇듯 신발을 벗고 슬리퍼에 발을 끼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슬리퍼를 신지 않은 채 들어와서 대기 의자에 앉았다. 바닥이 그리 깨끗한 것 같지 않아서 슬리퍼를 신으라고 해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혹시 그의 큰 발에 맞는 슬리퍼가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먼저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를 받고 나와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남들이 신던 슬리퍼를 어떻게 신느냐면서 질겁을 하였다. 사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다시 생각해 보니, 남들이 발을 끼웠던 곳에 내 발을 끼우는 것이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러면 이런 경우에 캐나다에서는 원래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신발을 벗어야 하는 곳에 가면 자신의 슬리퍼를 가지고 간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여름철에 샌들을 신고 다니다가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맨발이 민망하여 덧신이나 양말을 꺼내서 신곤 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 것이다. 아니면, 슬리퍼로 갈아 신는 대신 신발 위에 덧신을 씌우기도 한다고 했다. 요새는 흔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다들 덧신을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마사지 숍이나 스파 같은 곳에서 공동 사용하는 슬리퍼가 나온다면, 대부분 일회용이거나, 아니면 빨아서 준비한 슬리퍼를 제공하고, 사용 후에 수거함에 넣어 다시 빨래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즉, 남이 방금 전에 신었던 슬리퍼에 내 발을 끼우는 것이 참으로 싫다는 건데,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지저분한 장화는 반드시 벗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