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핸드폰으로 작성한다. 노트북 전원 켜고 세팅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핸드폰 메모 어플 여는 손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최은경
SNS 계정 또한 조카가 만들어줬다. 간혹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단숨에 핸드폰부터 낚아채 뚝딱 해결해버린 후, 도로 툭 건네준다. 두 번 되물을 용기는 없다. 작년 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케이크를 주문할 땐, 키오스크에서 꼬치꼬치 세부사항을 묻는 통에 이것저것 겹쳐 누르다가 결국 시스템 오류로 전원이 꺼져버렸다.
뒤에 서 있던 고객들까지 지체되는 심각한 사태에 진땀마저 흘렀다. 결국 대면주문을 위해 앞전에서 비슷한 곤욕을 치른 듯한 동년배들과 나란히 구석 자리로 비켜섰다. 비록 깊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어도 서로 닮은 표정이 속마음을 짐작케 했다. "남은 인생 어찌 살아가야 할꼬..!" 그날 이후로 아이스크림가게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지난 번엔 점원이 도와줬지만 두 번의 민폐를 끼치기 두렵다.
반려견과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데 도로변 전자매장 안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개를 홍보하는 뉴스 영상이 보였다. 네 발로 성큼성큼 걷고 점프도 하며 발랄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에 잠시 딴 생각이 들었다. "AI 로봇개도 목줄 채우고 산책시켜야 하나...?" 중년층 역시 아날로그와 디지털 경계 그 어디쯤에서 표류 중인 반소외계층일 뿐이다.
우리도 언젠가 늙는다
아직 키오스크가 설치되지 않은 동네 삼거리 'OO마트'는 어르신들 최후의 격전지로 남을 가망성이 크다. 그곳마저 함락된다면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우든지, 주말에 한 번 열리는 7일장을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는 나도 삼거리 'OO마트'에 갈 생각이다.
4차산업혁명이 화두인 현세의 물결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 지금보다 편리한 혜택을 제공한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다만 그 목표가 진정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현실 부적응자로 낙오되어 자존감을 상실하는 일 없도록 부디 천천히,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를.
무인상점 안의 키오스크 앞에서 30번 이상 재시도 했다는 정직한 초등학생 기사도 있지 않았던가.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권위자 제프리 힌턴은 AI가 인류에게 미칠 나쁜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최근 10년 이상 몸 담았던 구글에 사표를 냈다. "자본주의와 경쟁체제 속에서 AI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AI 기술을 넓혀선 안 된다"며 발전 속도에 국제적인 규제 도입을 제시했다.
우리도 언젠가 늙는다. 훗날 미래세대가 만들어낼 5차산업혁명의 신세계를 상상해보라. 마냥 좋기보단 다리가 먼저 후들거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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