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송은 한 눈에 웃자람이 느껴질 정도로 새순이 비대하다
유신준
오늘 작업장소는 주택가 아담한 양옥집이다. 정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주차공간이 있다. 가운데 통로와 사이에는 흑송이 버티고 서 있다. 흑송은 한눈에 웃자람이 느껴질 정도로 새순이 비대하다.
커지면 커진 만큼 정원사는 힘들다. 왼쪽으로 흑송을 비켜선 아랫쪽에는 챠보히바(편백류)가 거대한 달덩이로 떠 있다. 정문에서 보면 좌히바 우흑송 쯤 되겠다. 흑송의 자연미와 히바 인공미의 절묘한 균형이 눈길을 끈다.
히바류는 편백나무로 만든 원예 품종의 총칭이다. 챠보히바는 일본 정원의 대표적 상록수인데 성장이 느리다. 1미터 크는데 5년이 넘게 걸리는 느림보 수종으로 알려져 있다. 성장이 느리다는 건 그만큼 손질하는데 세심해야 된다는 얘기다. 성장이 빠른 나무라면 약간 실수를 해도 금방 새순이 자라서 감춰주지만 이건 실수하면 그걸로 끝이다.
오늘 일거리가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부가 뒷쪽으로 가면서 손짓한다. 후원에 다른 일거리가 또 있다. 적송 두 그루 제거 작업이다. 하나는 완전히 고사했고 다른 하나는 가지가 많이 잘려지고 상태가 안 좋다. 오늘 두 그루 모두 제거해야 한단다. 간단한 게 아니었군.
죽은 나무는 그냥 제거해도 되지만 살아있는 나무는 고별 의식을 치러야 한단다. 한 집안에서 지금까지 삶을 함께 해온 생명에 대한 예의란다. 정원주가 준비해 둔 술과 쌀, 소금을 유리컵에 가져왔다.
간소하지만 정원주와 작업자가 함께 치러야 하는 의식이다. 세 종류의 컵을 소나무 앞에 차렸다. 사부가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두 번 치더니 다시 고개를 깊이 숙인다. 나도 눈치껏 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