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작가)가 오마이TV '이 사람, 10만인 코너'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병기
1923년에 발생한 간토 대지진은 진도 7.9로 34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을 낳은 대참사였다. 이로 인한 사망자만도 10만 명에 달했다. 간토(關東)는 도쿄 도와 사이타마·지바·이바라키·도치기·군마·가나가와 현을 이른다.
이는 자연재해였는데, 또 다른 대참사도 있었다. 일본 계엄 당국에 의해 자행된 간토대학살이다. 학살 피해를 조사한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은 6661명이 죽었다고 보고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됐고, 간토대학살은 이 유언비어로 흥분한 자경단이 저지른 일이라고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민 작가는 "이는 잘못된 서사이며, 대규모 재난에 체제 위협을 느낀 계엄 정부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제노사이드 학살극을 주도했다"라면서 "특히 자경단은 계엄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민간 경찰이자 준군사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민 작가는 "자경단의 규약에는 경찰서장의 지휘 아래 활동한다고 명시돼 있다"라면서 "당시 자경단의 핵심인 재향군인회의 1세대는 동학농민군 토벌대, 2세대는 의병 전쟁에 투입됐던 군인들, 3세대는 함북 청진 등에서 조선독립군을 때려잡던 자들로 간토 지역에서 징병된 19사단 군 출신들이다, 조선인 학살자들이었다"고 말했다.
민 작가는 "자경단을 실제적으로 움직였던 건 대규모 재난 시기에 체제 위협을 느껴 계엄령을 선포한 일본 정부였고, 계엄령의 명분으로 '조선인 폭동설' '조선인 습격설'을 내걸었다"라면서 "도쿄 일원에 출동한 기병연대 등 군인 7만 5천여 명에게 실탄을 지급해 '조선인을 죽여라' '적은 조선인이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민 작가는 "일본 정부의 국가 범죄와 학살의 주체가 군대였다는 것을 입증할 일본 정부의 기록은 차고 넘친다"라면서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과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구상을 했고, 그 후 일본 사회는 파시즘 체계로 진입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