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사업장인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됐다. 2019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제작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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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동지, 사실 생전에 김용균 동지를 알지 못했으니 '동지'라 불러도 될까 싶습니다만, 비록 사후에라도 저와 김용균 동지가 바라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서는 같은 뜻을 가진 동지라 여깁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김용균 동지의 말은 불행히도 동지가 죽은 다음에야 우리 귀에 닿았습니다. 김용균 동지, 평안히 쉬고 계신지요? 저는 건설노동자 박세중입니다.
5년 전 뉴스를 접했을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하다가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쳤습니다. 많은 이가 함께 울며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고, 또 많은 이가 위험 작업을 낮은 곳으로 내치는 자본의 생리에 분노했습니다. 김용균 동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김용균법'이라 불리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많은 노동자가 목소리를 냈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초석이 될 법한 산업안전보건법을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또 다른 김용균 동지의 죽음을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법'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법 제정·개정을 요구하며 투쟁합니다. 김용균 동지가 떠나고서 2년이 넘는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산재 피해 유가족과 노동자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단식 투쟁으로 '기업살인법'을 요구했고, 건설노동자들도 중앙과 지역의 민주당사를 점거해 당론 채택을 요구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10만이 넘는 국민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의했습니다. 이 청원을 올리신 분은 바로 김용균 동지의 어머님이시죠. 이렇게 만들어진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입니다.
처벌 받지 않는 사업주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될 때 사용자 측은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서는 명절을 핑계로 많은 건설현장이 멈추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공사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휴일도 없이 일을 시키는 건설사가 결코 하지 않을 조치입니다. 절반에 달하는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건설업에서 '1호' 중대재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온 사회의 이목이 건설현장에 집중되었습니다. 당시의 기대대로라면 이 땅의 중대재해는 모조리 사라질 것 같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안타깝게도 또 다른 김용균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에 부칙을 두어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현장)에는 법 적용을 유예하여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됩니다. 전체의 80%가 넘는 중대재해가 50인(억)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건설에서는 공사를 분할 도급하여 50억 미만 현장을 만드는 일이 잦습니다. 그럼에도 현 정부와 여당은 법 적용을 또다시 유예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부는 법의 실효가 없다고 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 제정 이후 중대재해는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법을 무력화하는 정부의 메시지가 나오고 수사-기소-처벌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서 중대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실효가 없어 보이는 것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400여 건의 중대재해 가운데 기소된 건은 20여 건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업주를 합당하게 처벌해야만 법의 취지대로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수의 중대재해를 일으켜 노동자를 죽게 하고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 사업주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