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만난 판화가 김준하.
최방식
'하드코어 X게임 매니아' 두 번 개인전
그의 스케이트보드 판화는 딱 이거였다. 미국에서 시작됐고 국내에는 흔치 않은 격렬한(익스트림) 스포츠다 보니 시설이 거의 없고 관련 제품 구입이 여의치 않은 게 현실. 그러니 직접 디자인 하고 제작해 자기들만의 놀이(스포츠)를 즐기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기물(지름 6미터 사발처럼 생긴, 작품명 '에그보울')과 스케이트보드에 붙이는 스티커 및 옷 디자인 판화들이다. 대학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1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하지 않던 그가 자신의 예술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 미술(판화전공)을 공부했죠. 마침 그때 스케이트보드에 빠져들었어요. 기성 질서를 거부하는 문화가 제 성향과 딱 맞았나 봐요. 창의적 예술을 공부해 그런지 몸동작 등을 새롭고 다양하게 구사하는 게 즐거웠어요. 친구들도 괜찮다고 수긍했고요."
그는 길에서 만난 10여 명의 엇비슷한 나이대 동호인과 늘 함께 다니며 놀았다. 예술적 감각을 살려 스포츠를 즐기는 영상작품(비디오, 스케이트보드 예술 장르 중 하나)을 다큐형태로 제작해 유튜브 등 SNS에 올리며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나 아트(디자인) 등의 장르에 관심을 가지니 제 예술본능이 살아났나봐요. 판화를 다시 떠올린 거예요. 스케이트보드 디자인에 민중 판화를 활용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2022년 말인데 이듬해 9월까지 집중 작업을 해 작품을 만들었고 10월 개인전을 서울과 여주에서 두 번 열게 된 것이죠."
밈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 모방)와 유전자(gene) 합성어다. 영국 생물학자 도킨스가 펴낸 <이기적 유전자>에 소개됐다. 문화는 비유전이지만 유전처럼 전파된다는 개념. 짤방(드립)이라 하면 쉽다. 중세 흑사병 죽음 행렬을 수백년 뒤 예술(음악)로 표현한 생상스의 짤방이 교양시 '죽음의 무도'라면, 스케이트보드의 저항 정신을 담은 밈은 그의 판화 '핸드플랜트'(보드를 타며 한손으로 땅을 짚고 물구나무서기)인 셈.
민중판화를 생각해낸 걸 궁금해하니, 그는 둘의 비슷한 점을 들었다. 선이 굵고 투박한 예술이다 보니 격렬한 스포츠 스케이트보드를 표현하는 데 적합했단다. 노동자 등 저항정신을 민중판화가 담듯, 스케이트보드 역시 기존 질서와 거대한 콘크리트 도시를 거부하는 정신을 담고 있다고 했다.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기성질서를 거부하는 마음을 잘 표현한다고 여겼으니까요. 대중적이기를 거부하는 성격도 그렇고요. 50~60년대 초기 활동들을 찾아보니 흥미진진하더라고요. 당시 예술 장르를 이뤘던 민중판화를 떠올린 게 어찌 보면 당연했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