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에 둘러선 벚나무 군락워싱턴 D.C. 내셔널 몰같은 관광지 뿐 아니라 워싱턴 D.C.에 접한 북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일대의 공원, 박물관, 아파트 단지와 가로수, 주요 관공서 등에도 계속 벚나무가 심기고 있다. 필라델피아와 뉴욕 등 미 동북부는 봄마다 벚꽃이 지천이다. 버지니아는 주화인 도그우드(Dogwood) 만큼이나 벚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미동부는 벚나무로 지배당한 것 처럼 보일 정도다.
장소영
몇 년 전 워싱턴 D.C. 북쪽과 인접한 메릴랜드주에 살 때였다. 근처에 NIH(미국 국립보건원)가 있어서 한국과 일본 연구원 가족이 아파트 단지에 많이 살았다. 봄이 되면 아파트 단지에 둘린 벚꽃 나무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가을이 되면 황금빛 단풍과 낙엽이 장관을 이루었다. 일본 연구원 가족이 '사쿠라'라고 하는 건 그렇다 치고 미국인들 특히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부르는 건 참기 힘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작문 숙제나 글짓기 대회에 나가 '한국산 제주 왕벚꽃'을 주제로 글을 쓰게 한 것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키려다 보니 나도 공부 아닌 공부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딸은, 반세기 전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 왜 워싱턴의 한 대학 교정에 벚나무를 심게 되었는지 작문을 해 유명 교육출판사 '스콜라스틱'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벚꽃' 이름을 찾아주려는 선조들의 노력
1943년 4월 13일, 워싱턴 D.C. 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 학내지 <The American Eagle> 1면에 "사실 확인-일본이 아닌 한국 벚나무(Cherry Trees Korean, Not Jap; Impress Right Confirm fact)"라는 제목을 달고 교내 벚나무 식수 행사 관련 기사가 실렸다. 부모님이 한국 선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던 더글러스 총장의 지원아래, 한국여성구호협회로부터 기증받은 벚나무 네 그루를 교정에 심었다고 한다.
기사는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을 기념하는 이 행사에서 더글러스 총장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오래전 역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임정시절 이승만 대통령의 노력은 이런 내용이었을까. 같은 해 랜킨 하원의원이 미 의회에 정식으로 워싱턴의 벚나무를 '한국 벚나무'로 부르자는 결의안도 발의했다. 워싱턴에 심긴 벚나무가 제주도와 울릉도에서 채집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은 일본 벚나무에서 '동양 벚나무'로 공식명칭이 바뀌는 정도에서 그쳤다. 학보는 또 이승만 박사가 언급한 '이 위대한 나라(미국)에서의 일본의 프로파간다 영향력'이라고 언급한 연설 일부를 싣고 있었다. 이번 <뉴욕타임스>기사가 '민족주의 프로파간다'라고 지적한 부분을, 한 세기 전 일본이 먼저 공격적으로 시작했음을 당시 선조들은 직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