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하마비가 있는 경기전 문 앞. 작년 가을 조경묘와 경기전 대제가 있었음을 사진은 보여 주고 있다.
이영천
그런 전주성이 무지렁이 농민군 손에 함락당해버렸다. 왕조 창건 이래 초유의 참사다. 고종을 비롯한, 왕후 민씨가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훤하다. 살아날 궁리에 몰두하다 어리석은 판단에 이르고 만다.
전주성 함락 와중 판관(=전주시장)이란 자는 제 한 몸 안위를 보장받으려 경기전 이성계 어진을 들고 완주 위봉산성으로 도망가는 민첩함을 보였으니, 나라 꼴이 대체로 이 모양이었다.
전주성을 향하여
기세가 오른 혁명군이 엄청난 속도로 전주로 진군한다. 하루만인 4월 24일 원평에 이르자 백성들 환호성이 대단하다. 전주성 턱밑까지 진군했으니, 이제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한편, 생쥐처럼 법성포에 웅크리고 있던 홍계훈은 패전 소식에 반나마 넋을 잃고 그 밤을 법성포에서 보낸다. 그와 동시에 증원군이 당도한다. 혁명군이 갈재를 넘었다는 정탐 보고에 25일에서야 법성포를 출발한다. 증원군을 합해 1500명 군사에 보급품 수레가 엄청나다. 군량보다도 탄약, 포탄, 총탄이 주를 이룬다. 학정에 시달리는 선량한 백성을 죽이라고, 나라님께서 친히 내어 주신 물건이다.
원평 혁명군 진영에, 고종이 이효응과 배은환을 종사관으로 보낸다. 왕의 윤음(=왕이 신하와 백성에게 내리는 말로 법령과 같은 위력을 지님)을 전달한다는 명분이다. 아울러 왕의 재산인 내탕금을 건네며, 전쟁을 멈추라는 뜻을 전한다. 무기를 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기치로, 그 척결대상인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반란군에게 왕이 보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