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성산읍 키아오라리조트에 찾아온 최만자(가운데) 여성신학자 가족. 왼쪽으로 남편 여무현 씨와 조카, 오른쪽으로 미국에서 온 시누 부부.
이봉수
초임기자 시절 작은 기사의 인연
1986년 <조선일보> 초임기자 때 기사로 소개했던 분의 일가족이 지난 14일 3박4일 일정으로 제주 성산읍 키아오라리조트를 찾아왔다. 당시 한국자동차보험 여무현 이사 등이 30여 년 전 스승 부부를 수소문 끝에 찾아 서울 나들이를 시켜드리는 기사였다. 전쟁 직후라 학교도 파괴되고 교과서도 없던 시절, 3년 내리 담임을 맡은 스승은 부모 못지 않은 양육자였다.
그로부터 다시 38년, 나의 '제주살이' 연재기사에 공감하던 '뜻밖의 빈객'이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다. 더 놀란 것은 처음 뵌 부인이 꽤 이름난 1세대 여성신학자 최만자(81) 선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솥뚜껑 삼겹살구이 등을 접대하고 인근 관광지를 안내하면서 들은 한 여성의 일대기와 교회편력은 드라마가 되고도 남을 이야기였다.
우리 부부가 말년에 '숙박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뤄질 수 없는 만남이었고 들을 수 없는 얘기였다. 나는 평생 무신론자로 살아왔기에 더욱 그랬다. 종교가 없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개신교 상당수 교단의 막강한 교세와 지나친 수구 성향이 정치·경제·사회 민주화는 물론 남북 평화정착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끊임없이 공포를 부추기고 남북간에 어쩌다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도 극우·반공 이념으로 발목을 잡아왔다.
세계 최대 교회 즐비한 서울... 제주에서 저지른 악행
2000년부터 6년간 유럽에 머물 때 놀란 것은 성당과 교회 어디를 가봐도 많아야 100여 명이고 수십 명 신도가 예배를 보는 광경이었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도 수 기준 세계 최대 교회는 56만의 순복음교회를 필두로 줄줄이 서울에 있다.
성경에도 예수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했는데, 우리 개신교는 거대한 교회를 짓고 메가이벤트처럼 예배를 진행한다. 그러면서도 세금을 내는 목회자는 거의 없는데, 이번에 임기가 끝난 김진표 전 국회의장 등 종교별로는 절대 다수인 개신교계 의원들이 교회 과세 반대에 앞장서 왔다.
제주에 와서 취재하며 제주사를 공부하다 보니 영락교회는 제주4.3 때 무고한 양민들까지 악랄하게 학살한 서북청년단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으나 반성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천주교는 박해받았다는 사실만 교과서에서 배웠으나 1901년 제주에서 터진 이재수 난은 천주교와 제주민중이 충돌한 사건이었다. 프랑스 신부의 무소불위 권력을 업은 천주교도들은 정부가 파견한 징세관과 유착해 가혹한 세금 징수의 악역을 맡았다.
천주교도들의 선제공격으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자 흥분한 군중은 천주교도 317명을 살해했다. 프랑스 군함이 제주 앞바다에 출동하자 주동자들은 투항했으나 처형되고 제주도민은 프랑스에 6315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나마 천주교 제주교구는 2003년 1901년제주항쟁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을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