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그리는 김도영 작가
김현정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주시경 선생은 "나라말이 살면 나라가 살고, 나라말이 죽으면 나라도 죽는다"라는 말로 한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겨레의 얼이 담긴 말글을 지키려던 선조들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요즘 사람들은 한글을 세련되지 못한 촌스러운 문자쯤으로 치부한다. 간판과 메뉴판이 외국어에 점령당한 지 오래고 어린아이들은 한글을 제대로 깨치기도 전에 알파벳부터 배운다. 여기, 뒷전으로 밀려난 한글을 작품 활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작가가 있다.
어린 시절, 한옥에서 느꼈던 따뜻한 포용력을 아낌없이 끄집어내 냉대받는 한글에 온기를 불어넣는 김도영 작가. 그는 우리 겨레의 얼이 담긴 한옥과 한글을 융합해 한글 모양의 한옥을 그리고, 한옥 모양의 한글 글꼴을 만들어낸다. 한국화에서부터 타이포그래피, 설치 미술, 미디어아트, 그림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들기도 한다.
한옥과 한글을 주제로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꾀하는 김도영 작가를 20일 목요일 그의 세종시 작업실에서 만나 봤다.
"대학 때 한국화 전공, 한지·분채 아직도 고집"
- 지난 4월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조선시대 고택 홍판서댁에서 내년 전시회를 준비하는 작가님을 우연히 뵌 게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때 진행하신 프로젝트는 방문객들에게 작은 거울을 하나씩 나눠주고 편지를 쓰게 하는 거였어요. 프로젝트가 아기자기하게 느껴졌고, 작가님이 쓰신 동화책 <한글 품은 한옥>에 들어가는 삽화도 작은 그림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작업실에 와보니 작품의 규모가 상당합니다. 지금 작업하시는 건 어떤 전시회를 위한 작품인가요?
"내년에 세종시 홍판서댁에서 진행할 전시회에서 선보일 작품입니다. 올가을에 먼저 쇼케이스 전시를 하고 내년에 전시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내년 전시회에서는 그동안 제가 추구했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옥 내 여러 공간을 활용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과 일대기를 구현할 예정입니다. 안방은 어머니, 사랑채는 아버지, 건넌방은 자녀, 마당은 온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세분화해 각 공간의 주제와 어울리는 작품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제 그림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옥을 의인화하는 방식을 종종 활용합니다. 안방에는 한국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신사임당의 오죽헌을 참고한 작품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그 외 각기 다른 방에도 그 방에 어울리는 '한옥 작품'이 설치될 겁니다. 기자님이 직접 참여하셨던 거울 작품은 놀러 온 마을 사람이 돼 마당에 설치될 겁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