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밴드의 짓다
임현택
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소소한밴드는 셋이서 한 팀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각자가 자기 스타일대로 만든 노래를 다같이 부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곡의 초기 콘셉트는 개인의 스타일대로 작사와 작곡을 해오고 다함께 곡의 구성을 논의한다.
태준: "그런데 저희가 음악 스타일이 정말 많이 달라요. 짓다는 레게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할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저는 아이리쉬 음악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다 말하고, 라윤은 딱히 하고 싶은 음악은 없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연습할 때 짓다의 <뱃놀이>를 처음 연습하는데 코드는 단순한데 리듬을 못 치겠는 거예요. 이게 지금 읏-따다 인지 따다다 인지... 진짜 음표를 그려가면서 설명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하고. (웃음) 해본 적이 없는 리듬이었어요. 여전히 근본적으로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있어요."
라윤: "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웃음)
그렇다면 세 사람의 스타일이 합쳐진 음악은 아직 없는 것일까.
라윤: "그래도 저는 반 정도는 합쳐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짓다는 곡을 가져오면 자기가 이미 세팅이 완료된 상태에서 정확하게 나머지 멤버들이 해줘야 할 부분을 요구하는 편인데, 저와 태준은 한 80% 된 걸 던져놓고 같이 만들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혼자 만들었다고 하긴 좀 그렇고 여기서 이야길 들으면서 같이 수정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순서를 바꾸자, 이 부분은 없애자, 박자를 바꾸자 같은 거요. 짓다에게는 주로 가사를 바꾸라고 제가 강요(?)하거나, '노래를 그렇게 부르지 마! (웃음)'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연습할 때가 되게 재밌어요."
음악을 사랑하게 된 세 가지 장면
태준은 고등학교 때까지 남들 좋아하는 음악은 다 좋아하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아주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너바나(Nirvana)'의 락을 좋아했는데, 태준에게는 시끄럽기만 했고 심지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조그마한 산을 끼고 성균관대학교와 붙어있었는데, 어느날 대학교 축제에 '시나위'가 온다고 해서 친구들 손에 이끌려 따라가게 됐다. 그때가 음악에 빠지게 된 첫 순간이었다고 태준은 똑똑히 기억한다.
태준: "그때 시나위 보컬이 김바다씨였던 때였어요. 막 들뜬 친구들한테 이끌려서 산을 딱 넘어가는데 산 너머 대학 운동장에서 시나위가 공연을 하더라고요.
저는 서울 살면서도 그런 라이브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산을 넘어서 꽝꽝꽝 울리는 그 음악이 너무 새로웠던 거죠. 그땐 사람이 얼마 없어서 무대 앞에서 공연을 보는데 너무 멋있고 너무 좋아서 홀딱 빠졌어요. 그 공연 본 후로 시나위 앨범을 사고, 주말에 기타 연주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서울살이를 전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놨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지만 서울엔 <수요예술무대>처럼 무료로 진행하는 공개방송이 많았고, 학교가 끝나면 태준은 친구들과 자우림, 박정현 같은 가수들을 보러 갔다. 성인이 돼서도 홍대에서 연습실을 잡고 음악을 만들었고, 가끔 버스킹과 공연을 했다. 일상을 음악에 바치는 '전문 음악인'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다양한 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갔다.
라윤은 팀 활동은 해본 적 없이 혼자서 노래듣기와 가사쓰기를 좋아하던 '방구석 뮤지션'이었다. 그러다 동기의 졸업작품에 악기 소리와 허밍을 넣은 OST 작업을 처음으로 음악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단히 멋지게 녹음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잡음 없는 정도로 만들어진 단순한 음악을 두고 친구와 라윤은 기뻐했다.
라윤: "그냥 음악은 나의 삶인 것 같아요. 밴드 음악, 국악, 외국의 다양한 장르 할 것 없이 어떤 음악이든 다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디 한 군데에 꽂혀서 집중하는 타입이 아니예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잘 시도를 안 하다 보니 특별히 음악 할 생각도 없었죠. 오히려 지금 밴드 활동을 하면서 제 귀가 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짓다가 밴드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때와 라윤이 짓다와 연애를 시작한 시기가 우연히 맞물렸다. 그때도 바빠서 같이 있을 시간도 부족했던 때라 라윤은 매번 짓다의 연습실에 놀러갔다. 그렇게 7년이나 따라다니다 보니 라윤은 좋은 음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음악을 더 즐길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다.
라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심심했는데 왜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땐 짓다도 합주할 때 말을 안 하는 캐릭터였거든요. 심지어 '꽂는 소리'도 싫어했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연습실과 공연장을 따라다니다 보니 듣는 귀가 생긴 거예요. 아, 여기선 베이스가 좀 작은 것 같고, 여기선 좀 더 살리면 좋겠네 하면서 전체 구성을 듣기 시작한 거죠.
나중에는 멤버들이 저한테 곡이나 연주가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고요. 잘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요. 그러면서 원래 좋아했던 음악이 더 좋아졌어요. 지금도 듣는 연습은 진행 중인 것 같아요."
짓다가 음악에 발을 들인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주 친했던 친구가 스쿨밴드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래, 재밌게 해. 친구가 드럼을 친다고 하고 보컬과 기타를 구했다고 했을 때도 짓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재밌게 해. 그런데 "베이스가 없어서 네가 하면 좋겠다"는 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밴드에 들어가게 됐다. "악기는 어떻게 해야 돼?"라는 짓다의 말에 친구는 대답했다. "사와." 베이스가 뭔지는 몰랐지만 짓다는 그날로 덥석 싸구려 베이스를 샀다.
짓다: "베이스를 샀는데 스쿨밴드 3학년 선배들은 졸업을 한 거예요.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독학을 했어요. 처음 베이스를 쳤던 기억이 되게 강렬했는데, 2학년 올라가는 봄방학이었거든요. 한 곡 악보를 놓고 베이스, 드럼, 보컬 맞춰서 봄방학 일주일 내내 연습한 거예요. 아침에 9시쯤에 나와서 연습을 하다가 점심 때 컵라면 하나 먹고 연습을 하다가 저녁 5시에 집에 가는 걸 일주일 동안 반복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더라고요.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어요. 악기라고는 리코더와 캐스터네츠만 해봤던 상황에서 이 경험이 그 뒤에도 큰 울림이 있었어요. 그때처럼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생각도 하고요. 그게 제가 음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짓다가 음악에서 받은 짜릿함은 스무살 때도 이어졌다. 거제도에서 열린 작은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마침 스쿨밴드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은 것. 마치 청춘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다시 한번 고등학교 때의 스쿨밴드 팀이 거제도로 뭉쳤다. 행사 주최 측에게 거제에 있는 한 대학의 동아리방을 연습실로 얻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같은 멤버, 같은 방식의 연습이었다.
짓다: "낮에 각자 일정이 있으니까 저녁에 만나서 산중턱에 있는 학교 동아리방에서 밤새 연습을 하고 그다음날 아침에 나오고. 그다음날엔 오후 일정을 마치고 나면 집에서 자고. 그렇게 1박 2일 퐁당퐁당 일정을 계속 했어요.
그때 또 친구들이랑 같이 연습하다가 잼하다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하여튼 젊을 때 했던 기억들이 너무 좋아서 혼자서 음악하는 것보다는 팀으로 하는 걸 선호해요."
짓다의 말을 듣고 있단 라윤이 한 마디를 보탠다. "젊다, 젊어. 우리도 일주일만 합숙하면 정말 잘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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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넉넉
글 / 승현
인터뷰 일자 / 2024년 7월 19일
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 저자.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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