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선생의 '매창뜸' 시비가람 이병기 선생의 '매창뜸' 시비
오승준
고명한 학자는 이승을 떠나지만 글을 남긴다. 유업은 학덕을 입은 제자들의 몫이다. 가람이 가신 5년 후인 1973년 제자 시인 최승범이 <가람시조선>을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
1939년에 문장사에서 나온 <가람시조집>이 오래 전에 절판인 데다 그 후에 쓴 시조를 찾아서 펴낸 것이다.
목차를 보면 1. '계곡의 장'에는 계곡 등 16수. 2. '난초의 장'에는 난초(1) 등 28수. 3. '시름의 장'에는 젖 등 27수. 4. '생활의 장'에는 괴석 등 48수. 5. '추도의 장'에는 주시경선생의 무덤 등 20수가 실렸다.
책의 말미에 엮은이 최승범은 <가람과 시조>에서 스승의 생애를 일별하면서 '시조론'의 정립에 노력한 스승을 평가한다.
가람 이병기(1891~1968)에 대해서는 그가 이룩한 공적을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폭넓은 국학자요 예술가였다. 국문학도 사적(史的)이고 개론적으로 과학화한 학자요. 시가(詩歌)와 양화(養花)와 주도(酒道)에도 높은 예술의 경지를 오도(悟道)한 예술가였다.
우리의 역사에서 이만한 분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가람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앞으로도 길이 두고 이루어져 나가야 할 것으로 믿는다. (주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