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곡 여시바윗골울산 유곡동에 자리하고 있는 호암곡(狐岩谷)은 '여시바윗골'로 불린다. 이곳에서 수운 선생은 그 유명한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신비체험을 한다. 을묘천서에 대하여 동학을 연구하는 분들의 여러 견해들이 있어왔다. 천도교에서는 대체로 수운 대신사의 영적체험이라는 견해이다. 또 동학연구자들 일부는 서학의 교리서 천주실의(天主實義)라고 주장한다. 이에 본 글로 을묘천서에 대한 논란이 불식되었으면 한다.
천도교중앙총부
여시 바윗골에서 신비한 체험을 하다
울산 태화강 상류에 있는 유곡동 호암곡(狐岩谷) 일명 여시바윗골은 야산에 둘러싸여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또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아 마치 어머니 품 안처럼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현재 복원된 초당 앞에서 잠시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며 정신적 고향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명당이다. 수운 선생이 여시바윗골 초당에서 시작한 사색과 기도는 반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증험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하여 십 년간 주유천하 때 구입한 여러 책자를 읽으며 자신이 한계에 이른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 해인 1855년(32세, 을묘년) 3월 3일 처음으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3월의 어느 봄날 정자에 기대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비몽사몽 간에 문밖에서 주인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바라보니, 어디서 왔는지 선사 모습의 스님 한 분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소승은 금강산 유점사에 있습니다. 기껏 해보아야 부처님 경전이나 읽는 처지나, 아무런 영험이 없기에 백일기도를 드리면 신기한 효험이 있을까 하여 간절히 원하며 빌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탑 아래서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탑 위에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읽어보니 세상에 보지 못한 귀한 책이었습니다. 소승은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뵈었으나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선생의 소문을 듣고 온 것입니다. 혹시 선생께서 이 책을 알 수 있겠는지요?"
수운 선생이 책을 펼쳐 보고는 "며칠간 살펴보겠습니다"라고 하자, 선사는,
"그러면 3일 후에 다시 오겠으니 그동안 자세히 살펴보심이 어떻습니까?"하고 물러갔다. 그날이 되자 선사가 와서 묻기를, "혹시 깨달은 바가 있습니까?"하니 수운 선생이 "제가 이미 다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선사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책은 진정 하늘이 선생께 내려주신 책입니다. 소승은 다만 이 책을 전할 뿐입니다. 바라건대, 이 책의 뜻과 같이 행하시길 바랍니다"하고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선사는 홀연히 사라졌다.
수운 선생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곧 선사가 신인(神人)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에 서책의 이치를 깊이 살펴보니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있었다. 노승이 전해준 서책의 내용이 곧 하늘의 계시를 적은 천서(天書)로 알고 지금까지의 제사로 행하던 구도 방법을 버리고, 하늘에 기도하는 수행의 방법으로 전환하는 중대결심을 하게 된다.
을묘천서(乙卯天書) 이야기와 닮은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수운 선생을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체포했던 선전관 정운구가 임금에게 올린 장계에 따르면, 서울을 떠나 경주로 가면서 최제우와 동학에 관해 탐문수사를 하였다고 한다. 당시 수운 선생의 고향인 가정리 근처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운 선생은 5~6년 전에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사 간 다음 무명옷을 팔아 살다가 가까운 해에 이르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중 돌연 공중에서 책 한 권이 떨어지는 것을 얻어 공부하였다. 사람들은 어떤 글자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홀로 선도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왕에게 보고한 관변기록에까지 있는 것을 보면, 을묘천서에 관한 영적 체험의 소문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수운 선생의 을묘천서 이야기는 한울님 계시에 의한 무형의 영적 체험으로써 새로운 구도 방법을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운 선생의 영적체험인 을묘천서(乙卯天書) 이야기는 선생께서 글을 남기는 등 직접 거론한 적은 없지만, 선생의 제자 강시원(강수)이 지은 '최선생문집도원기서' 등 동학 초기 역사서에서 전해오고 있다. 다만 수운 선생께서 지으신 늙은이와 젊은이의 꿈속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인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에 "···잠을 놀라 살펴보니 불견기처(不見基處) 되었더라"즉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살펴보니, 그곳에 아무도 보이지 않더라'등의 을묘천서와 닮은꼴의 이야기가 나옴으로, 을묘천서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금강산 상상봉에 잠간앉아 쉬오다가
홀연히 잠이드니 몽에 우의편천일도사가
효유해서 하는말이 만학천봉 첩첩하고
인적이 적적한데 잠자기는 무삼일고
수신제가 아니하고 편답강산 하단말가
나는또한 신선이라 이제보고 언제볼꼬
너는또한 선분있어 아니잊고 찾아올까
잠을놀라 살펴보니 불견기처 되었더라.
「몽중노소문답가」
호암곡 을묘천서 이후 수운 선생은 천성산 내원암과 적멸굴의 칠칠(49일)기도로 이어진다. 결국 을묘천서는 용담 득도의 단초가 되는 신비한 하늘의 계시였다는 추론도 하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