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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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을 보고 나는 그 시절, 민주화 운동의 얼굴들을 만났다. 끝까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버틴 이태신, 그의 동료, 부하들까지. 결연하고, 동시에 단념하고, 희망의 불쏘시개를 던지는 얼굴들. 1979년의 봄은 그들의 표정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세대의 얼굴을 가졌고 그 세대는 곧 재난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얼굴을 가졌을까. 우리 세대는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하나.
묘하게도, 나는 교수님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 있다. 학원 강사가 되어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던 때였다. 현장체험 학습을 간다며 설레하는 아이들이 귀여우면서, 동시에 이상했다. 분명 초등학교 때도 많이 가봤을 텐데 마치 처음 가는 사람처럼 신나 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너희 초등학교 때 체험학습, 많이 안 가봤니?"
"뭐더라, 세월호 때문에 그런 거 다 끊겼다는데요?"
세월호, 그 세 글자에 숨이 막혔다. 아이들은 2014년의 참사를 알지 못했다. 내가 민주화 운동에 대해 책으로, 뉴스로, 어른들의 슬픈 표정으로 배웠던 것처럼 아이들도 세월호를 배웠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 '전원 구출'이라는 허망한 헤드라인과 책임을 넘기기 바빴던 어른들,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했던 묵념. 그리고 나의 책가방을 따라다니던 노란 리본까지.
"너희는 세월호를 모르는구나, 나랑 다르네."
니들이 어떻게 알겠냐던 교수님과 같은 위치에 놓이자,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세대는 밀레니얼도, MZ도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재난이 정답일지 모른다.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히지 않고, 잊지 않기 위해 분투하게 하는 일. 이제는 현대사에 대한 영화가 나오면, '영화관까지 가서 이런 거 봐야 하냐'라고 툴툴거리면서도, 빠짐없이 좌석에 앉던 어른들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나는 <서울의 봄>에서 세대의 이름을 찾았다. 마치 전두광처럼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과 이태신처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그리고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까지. 그 사람들이 모여 한 시대를 만들고, 한 시대를 살아간다. 민주화 운동 세대에 바통을 이어받은 우리, 세월호 세대는 노란, 보라 리본과 함께 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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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 밖에 내세울 게 없습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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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세대가 본 '서울의 봄', 교수님의 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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