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현충원에서는 시민 100명이 모여 서울의봄 및 12.12 특별 현충원 투어를 진행했다. 사진은 전사자 정선엽 병장 묘.
권택상
이날 현충원투어를 진행하며 여러 질문을 받았다. 다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온전히 답을 하지 못한 게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 국군은 김오랑 중령을 비롯해 마찬가지로 12.12 당시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사망한 정선엽 병장 등을 어떻게 평가하고 가르치고 있냐"는 물음이었다.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라는 뜻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간부후보생 시절을 포함해 위관 장교로 4년 가까이 군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김오랑, 정선엽 등 12.12 당시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군은 참군인 김오랑 중령의 추모비 건립조차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2013년 국회에서 김 중령에 대한 무공훈장 추서와 추모비 건립안이 발의돼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국방부가 제동을 걸었다. 추모비를 세울 정도의 업적을 세웠냐는 이유였다. 결국 김 중령이 나온 육사나 특전사령부 어디에도 추모비는 세워지지 않았다. 대신 김 중령의 고향인 김해시 삼정동 삼성초등학교와 삼정중학교 사이의 산책로에 김해시민의 뜻을 모은 흉상이 세워졌다. 2014년 6월의 일이다.
돌아보면 군 시절 전국에 산개한 여러 전적지를 다녔지만, 때마다 만나는 인물들이 고정돼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을 필두로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한국전쟁 중 추락사고로 사망한 김백일 등이다. 당시에는 몰랐다. 이들이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한 '친일파'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참군인은 이런 분들이라며 추앙하고 마음에 새겼을 뿐이다. 이런 군인들만 배웠으니 반란군에 맞서싸운 김오랑 같은 군인을 기억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던 일.
그나마 다행이라면,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으로 여러 시민들이 12.12의 진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는 계기가 마련됐고, 이를 바탕으로 열린 현충원 투어에 100여 명 시민들이 모여 참군인 김오랑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알렸다는 점이다.
이에 서울 노원구에서 온 학군장교 출신 황승봉씨는 즉흥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제안을 현장에 있는 시민들에게 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서울의 봄>이 500만이 넘은 시점에 서울현충원에서 참군인 김오랑, 정선엽, 정병주를 만났으니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넘으면 또 다른 참군인을 찾아 대전현충원에서 '서울의 봄 투어'를 진행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의 제안에 투어에 참석한 시민들은 "조만간 다시 한번 대전현충원에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서로에게 했다.
서울현충원에 12.12쿠데타에 맞섰던 참군인 김오랑과 정선엽, 정병주가 잠들었다면 대전현충원에는 12.12 당시 반란군에 맞서 싸웠던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 등이 있다. 물론 이들 곁에는 12.12 반란의 주역이었던 유학성, 이차군, 우국일, 김택수, 김기택, 정도영, 안현태, 송응섭, 김윤호 등도 안장됐다.
세밑새해 어간에 대전현충원에서 다시 한번 '서울의 봄·12.12 특별 현충원투어'가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이유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진 '강행군' 투어에 함께 걸음을 이은 100여 명의 시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