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3 69주기 기념식. 한 유가족이 희생자 묘비에 참배를 하고 있다
장재완
제주 4.3 항쟁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승만은 초토화작전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했다. 2020년 발간된 '제주4·3 추가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12월까지 4·3 위원회에 심의·결정된 민간인 희생자는 모두 1만 4442명이다. 사망자의 78.7%가 토벌대의 손에 죽었는데 이 중에는 여성과 15세 이하 아동과 60대 이상 노인들이 30%를 차지했다.
2003년에 발간된 보고서('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도민 학살의 책임자로 초토화작전을 통해 대부분의 희생을 야기한 군 지휘부 및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경 진압을 지시한 이승만 대통령을 꼽았다. 또 남로당 제주도당 주도의 무장대, 진압 과정에 관련된 미군정, 서북청년회 등의 책임을 함께 물었다.
1948년 여순사건 때는 여수에 주둔 중이었던 조선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장병들이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출병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하자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의 진압을 초토화작전과 민간인 대량 학살로 대응했다. 시민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진압 과정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해 약 1만 명의 무고한 지역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유가족들은 '부모·형제가 빨갱이여서 죽은 게 아니라 죽은 뒤에 빨갱이가 됐다'고 호소하고 있다.
6.25 전쟁 기간 벌어진 대한민국의 대표적 학살을 꼽자면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이다. 국민보도연맹(아래 보도연맹)의 강령은 대한민국에 충성, 북한 괴뢰 정권 절대 반대, 공산주의 사상 배격이었다. 이승만 정부가 주도해 과거 좌익에 몸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실적경쟁으로 대부분 좌익활동과 무관한 사람들이 반강제적으로 가입했다. 공무원과 경찰은 할당된 숫자를 채우기 위해 가입하면 고무신을 준다, 비료를 준다, 보리쌀을 준다고 회유해 가입시켰다.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을 요시찰인으로 분류했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제일 먼저 끌어다 살해했다. 인민군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 어부나 농민 차림의 청년들은 우리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러냐고 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한 늙은이는 "영명하신 성주님 살려달라"고 소리쳐 울었다. 도시(부산)에서 끌려온 젊은이들은 "뭣 때문에 죽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죽는다고 했고, 이왕 죽는 몸이니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죽겠다고 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총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마구 쏘는 총성 속에 거꾸러지며 발악하는 아우성, 대한민국 만세 소리가 처절히 들려왔다. …
- 보도연맹원 학살의 현장을 묘사한 <부산일보> 1960년 5월 30일 자 기사 중에서
학계에서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사람만 최소 6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은 형무소재소자 학살과 부역 혐의자에 대한 학살로 이어졌다.
이승만을 가리키는 수많은 증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