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의 주황색 건물들툴루즈는 유독 주황색 건물이 많아 장밋빛 도시라고도 불린다.
유종선
당일 날 아침, 둘 다 기대에 들떠 일찌감치 일어났다. 슬슬 피로가 누적돼서 이른 기상이 둘 다에게 쉽진 않았지만 그 날은 특별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아침밥을 숙소 식당에서 열심히 먹였다.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이를 먹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입에 낯선 외국 음식인 데다 졸리기까지 한 아침이다. 먹이다 보면 복장이 터진다. 매일 아침 아이 엄마의 인내를 되새기게 된다. 그래도 여유 있게 일어난 터라 충분히 시간을 들여 먹이고 일어났다.
에어로스코피아는 대중교통으로는 가기가 어려워 우버를 타야 했다. 그런데 가다보니 우리가 탄 우버에는 카드 결제기가 없었다. 나름 예산 관리를 하기 위해서 난 우버에 결제 카드를 등록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현금을 내놓고자 하니, 내게는 200유로였는지 500유로였는지 30만 원이 넘는 큰 지폐 한 두 장만 있었다.
니스에서 지갑을 도둑맞으면서 앞서 써오던 현금과 주로 쓰던 카드를 도둑맞은 후여서, 캐리어에 남아있던 카드와 현금을 일부만 챙겨온 터였다. 우버 기사는 돈을 바꾸라며 근처 빵집에 내려주었다. 그러나 그 빵집엔 거스름돈이 없었다.
우버 기사는 다른 마켓에 내려주었다. 그곳에도 거스름돈은 없다고 했다. 엉뚱한 데서 시간이 크게 지체되고 있었다. 우주는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초조감이 너무 커져서, 우버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세 번째 빵집에서 먹을 것을 많이 사고 거스름돈을 받아 우버 비용을 간신히 맞춰서 다시 출발했던 기억이다.
우주를 안심시키며 에어로스코피아에 도착하니 4분가량이 지나 있었다. 다행이다. 아직 시작 안 했을 거야. 했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어. 에어로스코피아는 거대한 아스팔트 광장과 큰 건물 몇 동이 있는 형태였다. 잠시 두리번 거리다 메인 건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비행기 조립하는 곳까지 연결될 것 같지는 않은 건물이었다. 나는 매표구에서 예약 화면을 보여주며 어떻게 따라잡아야 되는지를 물었다. 5분 정도 늦은 상태였다. 사감 선생처럼 냉정하게 보이는 중년 여성분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예약 화면을 보곤 말했다. 비행기 조립 견학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을 위한 버스는 방금 출발했다고. 당신들은 볼 수 없다고.
그 직원이 너무나 단호하고 차가워서, 판타지 영화의 기숙사 사감 선생님의 클리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우주 역시, 불안한 기운을 감지했다. '왜요, 아빠 왜요? 뭐래요? 뭐라는 거예요?'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우주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늦었대. 여기서 단체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이미 출발해서 우리는 볼 수 없대.
'너 때문이야'... 나를 탓하는 마음 속 소리
당시 일그러지는 우주의 얼굴이 내겐 지금도 느린 화면처럼 기억이 난다. 우주는 이번 여행 전체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서럽고 가장 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꿈은 유치원 때부터 과학자였다. 기차나 지하철은 더 어릴 때부터 집착적으로 사랑해온 대상이었다. 비행기를 타게 된 직후부터는 비행기와 공항이 새로운 대상이 되었다. 비행기 조립 견학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커, 나도 기분이 좋아 맞장구를 치며 그 기대를 증폭시켜 주곤 했었다. 엄청 신기하겠지? 너무 재밌겠지?
나는 아이를 달래다 다급히 직원에게 매달렸다. 지금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나? 단지 5분 늦었을 뿐인데. 여기 다른 수단이 없으면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걸어서라도 따라잡을 수는 없겠나.
직원은 냉정하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주는 하늘이 무너지는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왜 아침 식사 때 꾸물거렸을까. 왜 더 일찍 출발하지 않았을까. 왜 우버에 카드를 등록해놓지 않았을까. 왜 미리 잔돈을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그 짧은 와중에 나에 대한 자책이 휘몰아쳤다. '혼자 하는 여행도 아닌데, 아빠가 돼놔서 이렇게 불안하게 주먹구구처럼 다닐 거야? 만날 아슬아슬하게 다니는 버릇하더니 애 아빠가 돼서 이런 꼴이나 겪는구나. 꼴 좋다. 넌 그렇다 쳐. 네 아들은 어쩔거야.'
직원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대신 에어로스코피아의 비행기 뮤지엄 전시를 들어가서 보라고. 애들은 그것도 좋아할 거라고. 여기 들어가게 해줄 테니 빨리 애를 달래라고. 이 건물의 용도가 비행기 뮤지엄이었다. 원래 조립 견학이 끝나면 이 전시까지 보여줄 요량이었다.
"우주야, 비행기 조립은 볼 수가 없대. 하지만 대신 옛날 비행기들 전시는 볼 수 있어. 아빠가 미안해. 그만 울고 전시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