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할머니 찾으러 돌아다닌 날

등록 2005.02.06 00:32수정 2007.06.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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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 교육관에서 칠순잔치를 한다는 할머니 한 분


"여기 사람들 없어요?"
"어떤 사람들 말씀하시는데요."
"오늘 여기서 칠순 잔치를 하기로 했는데…."
"여기서요? 그럼 오는 손님들을 이곳에 모시면 되나요?"
"그렇죠. 꼭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세요."
"예, 할머니. 알겠습니다."

익히 알지는 못하지만 한 두 번 뵌 듯한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던진 말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교회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할머니가 교회 교육관 문을 열면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칠순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올 것이니, 그들이 혹 오면 잘 붙들어 놓라고 부탁도 했습니다.

내게 있어서 그 할머니는 낯선 분이었습니다. 한 두 번 교회에서 뵙긴 했지만 좀체 말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 사이였습니다. 얼굴과 말씨가 어떤지, 몸이 좋고 나쁜지 조차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뵌 분이라 그런지 그 할머니의 뒷모습조차도 어떠한 형상을 했는지, 도무지 그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2〉그 할머니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

그 할머니가 사라지고 난 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손자뻘 되는 중학생 하나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 할머니 한 분이 다녀가지 않았어요?"
"응, 그런 것 같은데…."
"얼마나 됐어요?"
"아마, 5분도 안 됐을 걸…. 근데 왜 그러지?"
"뭐,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칠순 잔치를 하는 날이라며, 사람들이 오면 모두 붙잡아 놓라고 하시던데…."
"어디로 간지는 모르구요?"
"그렇지. 그냥 문 밖으로 나가셨는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자뻘 되는 중학생이 그 할머니를 찾으러 나올 정도라면 뭔가 심상치 않는 일이 벌어진 듯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스런 마음에 밖을 나가 봤더니 벌써 몇 몇 사람들이 그 할머니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중학생 손주 녀석과 옆집에 사는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그 할머니를 찾고 있었습니다.

〈3〉어디에도 없는 그 할머니의 흔적

나도 그 분들과 함께 그 할머니를 찾는데 거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하려던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차를 몰고 주변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할머니 생김새도 잘 모르고 걷는 폼도 떠오르는 게 없으니 그 손주 녀석을 차에 태우고 함께 찾아 다녔습니다. 물론 차가 출발하기에 앞서서 그 손주 녀석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 모든 상황을 알려 둔 상태였습니다.

그 손주 녀석의 부모는 곧바로 달려가겠다고 알려 왔고, 그 바람에 우리들은 조금은 안심한 채로 그 할머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든 노인이 밖을 나가면 얼마나 갔겠는가 싶은 생각에, 우리들은 가까운 지역만 몇 바퀴 돌았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옆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만났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 손주 녀석 말로는, 그 할머니가 몇 해 전에 교통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라고 일러 줬지만, 그런데도 주변 가까운 곳 그 어디에도 그 할머니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4〉"무전기가 안 되는데요" 하고 말하던 경찰 아저씨

한참을 찾고 또 찾아다니다가, 경찰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나는 경찰 아저씨가 순찰을 돌고 있는 듯하여, 그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다리를 조금 절면서 걷는 할머니 한 분 못 보셨어요?"
"못 봤는데요?"
"그럼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을까요? 다른 경찰 분들에게 연락이라도 해 주시던지요?"
"글쎄요?"
"그 무전기로 연락해 주시면 안 되나요?"
"무전기가 안 되는데요."
"……."

무전기가 안 된다는 말에, 나는 황당하고 또 황당했습니다. 순찰을 돌고 있다는 그 경찰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고작 그런 말이었으니,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습니다.

만약에 도둑이 들거나 강간범이 다른 사람의 집에 침입해서 일을 끝마치고 도망친다면, 그 순간 어떻게 연락할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무전기는 단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차고 있는 것인지, 그런 무용지물을 왜 차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고, 그런 저런 생각을 하자니 순간 화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더 이상 그 경찰을 붙잡고 이야기 해 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차 방향을 바꿔서, 이제는 좀더 넓은 변경을 그려가며 그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4〉"찾았어요. 할머니를 찾았어요"

아침 10시부터 그 할머니를 찾아 나섰는데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그 때 손전화가 울렸습니다. 그 소리는 가히 구원의 기쁜 소리였습니다.

"찾았어요. 할머니를 찾았어요."
"그래요. 어디서요?"
"동사무소에서요. 할머니가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갔는데, 그곳 경찰이 발견해서 파출소까지 모시고 갔고, 그 파출소에서 동사무소로 연락을 해줬다는 군요."
"어휴, 정말 잘 됐네요."
"그래요. 함께 고생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아니요, 할머니를 찾았으니 다행이지요."

그 할머니를 찾은 사람은 나와 함께 찾아 나선 손주 녀석도 아니고, 집 둘레 아저씨도 아니고, 그 할머니의 며느리 되는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 할머니를 찾은 사람은 그 할머니의 친아들이요, 그 손자 녀석의 친 아버지였습니다. 어찌됐던 간에 가장 가까운 피붙이인 아들 되는 분이 그 할머니를 찾았으니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5〉설 명절에 찾아뵙는 부모님들에게 더 사랑스럽고 더 따뜻하게

그 할머니를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 〈금쪽 같은 내 새끼〉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드라마 속에서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집밖을 나가 헤매고, 그래서 온 집안 사람들과 친척들까지도 그 할머니를 찾아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녔는데…. 가히 드라마 속에서 꾸며낸 일이 내 앞에 현실로 나타나다니…, 비록 내 일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지켜 보며 찾아 나선 나로서는 정말로 답답하고 캄캄해진 듯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시골에 계신 내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갑자기 치매라도 걸리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겨울철이라 쉬고 있지만 농번기 때에 갑자기 논밭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떻게 될까, 동네 분들 중에 누가 찾아가서 어머니를 엎고 병원에라도 갈 수 있을까…. 그저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속 할머니와 집 둘레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은 그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이번 설 명절에는 시골에 사는 어머니에게 더욱 잘해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우리 고유의 설 명절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모든 분들이 예전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더욱 따뜻하게 부모님을 대해 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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