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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그들은 왜 언제나 낮은 곳을 지향하는가?
당신은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영상과 음향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때가 언제인가. 그것이 어이없는 실소나 악의적인 고소가 아닌, 그러한 순수한 웃음의 기재(器才)는 대부분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TV를 보는 목적은 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겠지만 그들이 주는 역할의 측면에서 본다면, 특히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 혹은 웃음이라는 고귀한 감정의 선물을 가져다주는 TV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부분적 기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러한 '웃음'이란 것은 분노나 슬픔 혹은 우울함과 같이 본인의 독자적인 감정으로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능, 특히 코미디, 개그 프로그램은 언제나 칭찬과 질타, 그리고 감시를 동시에 받는 특수한 위치에서 그 인기를 유지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시청자들을 웃기긴 해야 하지만 절대 '질이 낮은 방법', 유독 그들 프로그램에만 적용되는 어떠한 '잣대'를 벗어난 소재로 웃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웃을 수 있는 기본적인 소재 자체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어느 정도 건드려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면, 무기를 빼앗은 채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방법이었다. 자신의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어눌한 말투를 내뱉으며, 몸이 부서져라 쓰러지는 슬랩스틱(slapstick)도 감수했다.
이 땅의 코미디언들과 개그맨들은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웃음을 전달하려고 애썼으며, 시청자들이 막막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러한 척박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낮은 곳'에서 시청자들을 우러러보며, 때로는 '높은 자'들을 가감 없이 풍자하는 용기를 보이기도 한 것이다.
[KBS <유머1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숨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했던 과거 80년대. 거리에선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연일 피어나고 붉은 피와 네 자로 된 구호가 귓 속에서 돌고, 머리에서도 돌던 그때. 그때에 우리네 아버지들께서 TV에서 보던 것들이란 그것이 어떠한 거죽을 뒤집어쓰던지 결론은 '모든 것이 그분의 뜻대로 잘 될 것이다'라는 얼핏 봐도 믿기 어려운 주장을 남발하는 지식인들의 가식적인 껍데기들뿐이었다 한다.
무너지는 서민경제.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그들의 삶의 애환, 부조리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 피폐해진 민심 등을 다루던 시사, 고발프로그램들은 그 나름의 의미는 있었으나 언제나 윗사람이 본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져 당시 기득권들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배제되어 있는 듯했다.
또한 내 아버지들의 그러한 불만을 전가시키고자 별 의미도 없이 환하게 웃고만 다니는 여자 연예인들의 모습이나 몇몇 사람들에게 모든 불만을 뒤집어씌우게 했던 TV 미디어의 모습들은 지금 반추해 보면 꽤나 억울한 일이라 한다.
TV에서 이처럼 모든 것이 잘되리라 말하고 우리들을 기만하던 87년. 바로 그때에 너무나도 용감하게도 TV에서 대놓고 '잘 될 턱이 있나~'라고 외치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신문 논설가도 아니었고 사회운동가도 아닌 당시 KBS2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유머1번지>에서 희끗한 머리를 휘날리며 비룡그룹 '회장님'을 분한 코미디언 고 김형곤씨였다.
아울러 TV 미디어가 외면한 서민들의 애환과 위로, 소소한 고민거리들을 집어내며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요'라고 말해주며, 같이 공유하며 같이 울고 웃겨주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코너들과 유명 코미디언, 개그맨들도 다름 아닌 <유머1번지>에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유머1번지>의 코미디 전개 방식은 꽤나 독특했다. 그들은 항상 코너 시작 전에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시사 주제를 하나 툭 던져 놓고는 거기에 대응하는 객체인 일반 서민들, 그리고 주체인 현재 정부, 혹은 기득권을 대표하는 은밀한 메타포(metaphor)를 통해 그렇게 그들 각자가 사회적 문제해결을 꾀하는 모습에서 웃음의 코드를 찾는 방식을 많이 취했다. 환언하자면 지금과는 달리 '느림의 웃음', '생각하게 하는 웃음'에 다름 아니다.
유능한 아버지 아래에 언제나 국사(國事)를 말아먹던 바보 동궁세자(심형래 분). 그리고 언제나 왕의 위기 타파 방법을 모르쇠로 일관하던 무능력한 대신들. 머리 희끗한 회장님과 그의 곁에 바싹 붙은 바보 같던 처남(고 양종철 분). 그리고 아부하는 능력 없는 이사들.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해 거기에 대한 생각을 조목조목 따지며, 꽃으로 제자를 때리던 탱자 가라사대의 성인(聖人) 탱자와 거지들을 끌고 다니며 언제나 다 떨어진 신문 조각을 맞춰 사회를 풍자하던 거지 왕초(고 김형곤 분).
아울러 <유머1번지>는 당시 남성들에게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자 금기의 일부였고, 아울러 코미디 역사상 '최초'이기도한 군대이야기('동작 그만'), 약간 모자란 캐릭터의 힘없는 서민 주인공들이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모습과 그들을 억압했던 사회적 부조리에 주제를 맞춘 애환이야기('내일은 챔피언' '맨손의 청춘'), 우리네 부모님들의 학창 시절을 상기시키며 그때에 암울했던 전체적 기억에서 행복했던 부분만을 재치 있게 말해 주었던 추억이야기('추억의 책가방'),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평범한 가정에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세대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며 시트콤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일상이야기('알딸딸') 등등.
지금의 감각적이고 꽤나 소비적인 웃음의 코드 대신 사회문제에 대한 일정한 문제의식과 배경지식이 없이는 웃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측면도 강함은 물론, 애드리브가 배제된 연기자와 탄탄한 대본, 그리고 적절한 배우들의 코믹연기가 어울려 그들만의 코미디 왕국을 건설했다.
따라서 당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나와 이름도 모를 와인을 홀짝거리며 불륜을 연기하던 핸섬한 탤런트들보다,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던 임하룡, 어눌한 일병을 연기한 이봉원, 부채를 들고 고민을 얘기하던 사람들에게 엉터리 점을 봐주던 장두석에게 더 큰 친근감과 사랑을 부여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상황, 특히 당시 어린 나에게는 외할머니 품에 안겨 '여로'에 나오는 영구를 보며 더 즐겁게 웃곤 했지만, 이제는 그들을 떠올리면 그때처럼 왠지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것,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더 나아가 그렇게 되었으면 했던 것을 시원하게 지적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표현하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KBS2 <개그콘서트>] 마빡이의 눈물 그리고 새로운 웃음의 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