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하 역의 주지훈KBS
<마왕>의 오승하의 경우는, 형의 무참하고 억울한 죽음이라는 원초적 상처가 그의 복수를 정당화해주고, 또한 역으로 복수를 위해 저당 잡힌 지난 십 년의 세월이 그 자신의 원한의 깊이를 증거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연쇄 살인을 획책하는 악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왕>에서 복수극이 더욱 비극적 성격을 띠는 것은 이처럼 오승하의 복수극이 지니는 처벌과 죄악의 이중성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판관의 위치에 올려놓고 죄인들에게 사적 처벌과 심판을 내리기 위해 어떠한 죄업을 짓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그가 악인이 되어 가면 갈수록 그만큼 그의 내면의 상처가 더욱 크게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그 위법성이나 잔인성에도 심리적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복수극의 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복수의 정당성과 사회적 위법성 사이의 간극에 있다. 그 간극이 크면 클수록 주인공의 심리적 딜레마와 비극성은 강화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드라마는 이러한 현대적 비극을 죄의식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로까지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서하은의 일방적 독주체제와 달리 강오수와 오승하의 양자체제는 죄악이 복수를 낳고 그 복수가 다시 죄악을 부르는 죄와 벌의 연쇄적 고리를 형성한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두 사람의 뒤바뀐 위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죄악과 처벌의 이중적 위치를 부여한다. 죄악과 처벌이 양자 모두에게 귀속되듯, 선악은 둘 모두에게 모호하고 불투명하게 공존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그리고 선악의 이원체제는 우리가 두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도 명확하게 동일시할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만들어준다. 그 거리 사이에서 우리는 두 주인공이 끊임없이 자문했을 질문들을 되돌려받는다. 악을 단죄하는 악은 정말로 악한 것일까? 한순간의 실수로 행한 악은 영원히 용서될 수 없는 것인가? 과연 무엇이 정의인 것인가?
상호파멸 예고하는 죄악과 처벌의 악순환
마지막 질문의 답은 아마도 '죄의식'이 될 것이다. 오승하가 의도적으로 던지는 범죄의 예고와 실마리들은 강오수가 자신의 과거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오수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은 역으로 자신의 오래된, 잊혀진 과거의 죄를 만나는 과정이 된다. 이것은 정확히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그의 죄의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오승하가 자신이 직접 범행을 저지르는 대신 불운한 제3자에 의한 우발적 범행을 꾀하는 것은 단지 약자를 이용한 고도의 지능적 범죄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강오수의 죄의식, 그 불안과 공포를 끌어내기 위한 치밀하게 계산된 단계적 실행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과거의 죄악이 어떻게 현재 속에, 제3자들의 삶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행하는 심판과 단죄는 또 다른 죄악이 되어 그 자신에게도 죄의식의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며, 이러한 죄악과 처벌의 악순환은 두 사람을 상호파멸의 길로 이끌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