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치매요양원? 천만에요!

김포시 치매·중풍 주간보호센터 '은빛사랑채'

등록 2007.04.17 16:28수정 2007.06.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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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리 되믄, 꼭 요양원에 보내도. 괜히 불효 어짜고 하지 말고. 요양원에 보내 주는 거. 그기 진짜 효도 하는 기라. 치매 환자 하나 때문에 온 집안이 엉망진창 되기는 시간 문제라 카더라.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부모는 부모 데이. 부모 가슴에 자식은 평생 애물단지일지 몰라도, 부모는 자식한테 애물단지가 되믄 안 되제. 그기 바로 부모인기라."

며칠 전. MBC 일일 드라마인 <나쁜 여자 착한 여자>를 한참 재미나게 보시던 어머니께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셨다. 극중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어머니 말씀에 무어라 대꾸를 하긴 해야겠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치매? 내 어머니가 치매?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을!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일흔을 넘기고 예순을 넘기신 네 분 부모님. 자식된 입장으로 당연히 치매란 병에 대해 한 번쯤 걱정해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무심했었다. 아니, 무심했었다는 건 사실 핑계이고 그 두려움을 애써 회피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을 때 내 어머니는 이미 치매로부터의 단단한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는 또 얼마나 두려우셨을까.

'김포시노인복지관'이 운영하고 있는 치매. 중풍 주간보호센터인 '은빛사랑채'를 찾게 된 건 어머니의 협박 아닌 협박(?)때문이었다. 알아둬서 해로울 게 없으니 한 번 가서 꼼꼼히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웬 봄바람은 그리도 을씨년스럽던지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은빛사랑채'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곳엔 봄이 한창이었다. 참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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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사랑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올해 일흔일곱의 할아버지. 치매 할머니의 좋은 말동무이시다. ⓒ 김정혜

"할머니. 점심은 맛있게 드셨어요?"
"그려. 오빠도 점심 먹었어?"

"그럼요. 근데 오늘 따라 할머니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네요."
"나? 그려.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 오빠가 와서 그려."


부부일까? 아니면 남매지간일까?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으신 할아버지의 눈빛이 어찌나 다정스러운지 깜빡 부부로 오해할 뻔했다. 할아버지는 자원봉사자였다. '은빛사랑채'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가 하도 낯설어 하셔서 조곤조곤 말동무를 해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올해 일흔 일곱이라는 연세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 할아버지는 '은빛사랑채'에 진 빚을 갚고 있는 중이라 하셨다.

'은빛사랑채'를 이용하고 계시는 어르신은 총 10분. 모두 치매 어르신이다.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그리고 생활보조원 이렇게 세 명의 인원이 그 어르신들의 수발을 들고 있었으며 거기에 두 분의 자원봉사자가 더 계셨다.

두 분의 자원봉사자는 놀랍게도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이었다. 그 중 올해 연세가 일흔 일곱이라는 할아버지는 한때 중풍을 앓으셨다고 한다. 그때 이 '은빛사랑채' 덕을 톡톡히 보셨기에 그 고마움을 자원 봉사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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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방과 즐거운 방이 있는 잘 어우러진 '은빛사랑채' ⓒ 김정혜

점심시간 후. 잠시 휴식 시간인 듯싶었다. 양치를 하시는 분, 시계를 올려다 보시며 부랴부랴 약을 드시는 분, 발 안마기에 두 발을 얹고 잠깐 낮잠을 주무시는 분, 누구에겐가 기분 좋게 전화 통화를 하시는 분…. 어르신들의 사랑방인 '은빛사랑채'가 잠시 수선스러웠다.

얼핏 보기엔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르신들이라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그렇게 활기 넘칠 수 없었다. 거기다 낯선 방문자인 내게 다가와 점심은 먹었느냐? 커피 한 잔 할 거냐? 며 자상함을 보이실 땐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할머니. 여기 오시니까 뭐가 제일 좋아요?"
"여기? 친구가 있어서 좋아."

"할아버지는 뭐가 제일 좋으세요?"
"맛있는 밥도 주고, 그림도 그리고, 색종이도 접고, 여간 신나는 게 아니야."

"그럼 저녁에 집에 돌아가실 때 서운하시겠네요."
"그려. 나는 그만 여기서 자고 싶은데, 시간되면 며느리가 데리러 오니 가야지 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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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손수 만드신 작품들이다. ⓒ 김정혜

한참 신나게 말씀을 하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벽 쪽으로 이끌었다. 벽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작품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물감을 찍어서 만든 그림들, 색종이로 접어 만든 갖가지 꽃이며 동물들, 한 분 한 분마다 정성을 다하시는 개개인의 화분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장엔 한 획 한 획 색종이를 오려 만든 당신들의 이름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이것저것 자랑에 열을 내시던 할아버지께서 풍선 놀이를 하자며 다시 내 손목을 이끄셨다.

이어 오락 시간인 듯, 풍선 놀이가 시작됐다. 한 할머니가 당신 앞으로 둥둥 떠오는 풍선을 아주 얌전하게 '톡' 튀기시곤 수줍게 웃으셨다. 그 풍선을 받은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힘 있게 쳐야지' 하시며 그 풍선을 맞받아 긴팔을 내뻗어 아주 힘 있게 '툭' 치셨다. 그리곤 한바탕 호탕한 웃음을 쏟아내셨다.

하얀 풍선이 할머니들에게로 가면 '톡' 소리를 내고, 할아버지들께로 가면 '툭' 소리를 냈다. 그리곤 환한 웃음소리를 못 견뎌 하며 애꿎은 천장만 자꾸 두들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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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놀이에 한껏 신이 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 김정혜

풍선 놀이에 마냥 신나 하시는 어르신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의 진정한 행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놓는 치매 어르신들.

하루 종일 혼자 지내시는 외로움보단 이렇게 어울려 함께 웃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오히려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면, 나만의 억측일까. 아니지 싶다. 어르신들의 저 티 없이 맑고 순수한 하얀 웃음. 그 속에서 알알이 튕겨져 나오는 저 행복….

김포시노인복지관의 유경호 관장은 '은빛사랑채'를 망망대해의 등대 같은 존재라 이야기한다.

"심신이 허약하고 신체 기능의 장애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 곤란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가정 내에서 보호가 어려운 경증 치매, 중풍 어르신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그런 어르신들께 낮 시간 동안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생활의 안정과 심신 기능의 유지 및 향상을 도모하고, 가족들의 신체적,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켜 어르신과 가족들이 사회, 심리적으로 안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바로 '은빛사랑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제반 여건상 더 많은 어르신들을 모실 수 없음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은빛사랑채'는 김포시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 치매·중풍 어르신들을 위한 주간 보호 시설로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이용료가 무료이며 일반 어르신의 이용료는 한 달에 15만이다. 일반 치매 요양 시설에 비해 아주 저렴한 이용료이다. 거기다 시설이라든가 프로그램 하나하나에도 치매 어르신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운영상 여건 때문에 10분의 어르신들로 그 이용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유경호 관장은 더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해 현재도 김포시와 여건상 조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은빛사랑채'를 나서는 길. 할머니 한 분이 박하사탕 몇 알을 가만히 쥐어 주셨다. 배고플 때 먹으라신다. 그리고 또 놀러 오라며 손을 흔드신다. 오래 손을 흔드시는 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박하 향처럼 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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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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