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이죽' 해결한 뚝심으로 지역 누빈다

[인터뷰] 서울 강북구 미아동 기초의원 최선

등록 2007.05.03 19:19수정 2007.05.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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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적인 예다. 하지만 이만한 지표도 없을게다. 대한민국 지방 자치의 현주소. 우리 동네 기초의원의 이름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마 그깟 이름 아는 게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우리네 삶에는 의미와 가치를 담고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기 때문에.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치를 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과 박근혜의 살얼음판 대결 구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듯, 우리 동네 지역 의회의 누군가에 대해 이렇다 할 정보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한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아직 지역 자치는 걸음마도 못 떼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여성 기초의원 '최선', 강북구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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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청과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 최선 의원. 피곤한 기색보다는 열정에 가득찬 느낌을 주었다. ⓒ 김형우

다행인지, 서울 강북구 동향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법한 기초의원이 있다. 바로 민주노동당 소속 최선(35·강북구 미아동) 의원이다. 강북구 주민이며, 풀뿌리 운동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4월 24일, 미아동 사무실에서 최 의원을 만났다.

최 의원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5년이 아닐까 싶다. 당시는 소위 '꿀꿀이죽 사태'로 한바탕 난리가 난 시기였다. 전날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로 아이들에게 아침 죽을 먹이는 어린이 집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사회적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최 의원은 당시 사태 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기자회견, 주민 홍보 등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 봤어요. 하루 동안 홍보지 2만 장을 돌린 적도 있어요. 두달 가량을 거리에서 살았지요. '꿀꿀이죽 사태'와 관련해서 '최선'이 열심히 일했다는 평가는 받았던 것 같아요."

지난 5·31 지방 선거는 그야말로 중앙 정치에 의해 쑥대밭이 됐고, 지방 자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이른바 '녹색후보', '초록정치공동네트워크'의 풀뿌리 후보들이 대부분 참패했으며 서울의 경우 한명의 후보도 내지 못했다. 중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제3후보군을 형성했던 민주노동당은 그나마 나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서울은 예외였다. 유일하게 관악구와 강북구에서만 민주노동당 기초의원이 나왔다. 그이가 최선 의원이다.

최 의원은 요즘 한창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강북구청은 공청회 한번 없이 정화조 처리 수수료와 쓰레기봉투 값 인상안을 상정, 추진했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반응 일색이었다. 결국 가까스로 쓰레기봉투 값 인상안은 보류되었으나 정화조 처리 비용 인상안은 통과되었다.

최선 의원은 "주민생활과 직결된 공공서비스 본위의 행정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대행업체의 이윤을 위해 봉사하는" 듯한 구청의 구태와 힘겨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최선 의원은 누구?

서울 강북구 삼양동 달동네에서 태어난 최선(35) 의원은 서경대학교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학습지 선생님으로 5년간 일하면서 민주노동당 당원활동을 시작했다.

학교급식조례제정 강북운동본부, 예산낭비저지 주민예산참여 주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했고, 강북구 보육조례개정 운동본부 상황실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에서 기반을 만들었다. 또 강북주민 무료법률 상담 센터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주민들이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지난 지방 선거 당시 최 의원은 임신 9개월의 몸을 이끌로 당선 돼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당시 그의 주된 선거 운동원은 학습지 선생님으로 만난 학부모들이었다는 후문이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외모가 인상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계약이 해지된 강북구 청소 용역 업체가 법인 명의만 바꿔 입찰에 참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구청 측은 여전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최 의원은 의정보고서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사태의 전말을 알리는 작업과 동시에 업체선정 과정의 문제를 철저하게 규명할 것을 서울시에 요청하는 주민감사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최 의원이 만날 싸움만 하는 아마추어는 아니다. 지난 2월 13일, 지방의회에선 이례적으로 중소 자영업자를 위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위한 입법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여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꼈던 어려움을 지역에서 모범적으로 풀어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최선 의원은 과연 자신의 이름처럼 강북 지방 자치의 최선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다음은 최선 의원과의 인터뷰 요약문이다.

꿀꿀이죽 사태, '최선' 다했다... 만삭 몸으로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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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청 청소용역업체 관련 의혹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 최선 의원(가운데)이 마이크를 잡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민주노동당

- 이번 4월 임시 의회에 제출한 조례는 어떤 내용인가?
"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수급권자가 아닌, 차상위 계층이 내야 하는 건강보험료 1만원을 지원하는 안이다.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등이 이에 속한다. 건강보험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하면 진료조차 받을 수 없는데 통과된다면, 지원체계의 틈새에 있는 분들에게 소중한 지원일 수 있다. 강북구 약 2000세대가 혜택을 입게 된다.

의회 반응은 예산이 수반되는 것이니 구청이랑 좀 더 협의를 하자는 쪽이다. '구청에서 예산을 안 주면 어떻게 하냐, 천천히 하자'고 말한다. 의회가 결의하고 구청장과 협상을 하면서 처리하면 되는데 오히려 의원들이 먼저 나서서 구청과 협의하자, 일단 유보하자니 답답할 노릇이다."

- 지난 지방 선거 결과 풀뿌리 자치가 실종되는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지역 시민운동 진영의 후보는 거의 참패했다. 민주노동당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텐데 당선 비결은?
"한 마디로 운이 좋았다. 서울에선 관악구, 그리고 강북구 2명 당선됐다. 관악구는 대대로 주민운동의 성과가 많은 지역이고, 강북구는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로 노력을 많이 기울인 지역에 속한다. 지방 선거 있기 전 강북구는 소위 '꿀꿀이죽 사태'가 한창 불거진 때였다. 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최선이 열심히 일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리고 여성이었던 점, 게다가 임신한 여성이었던 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선거 때 만삭의 몸으로 지역을 돌아다녔다. 30명 정도의 지방 선거 입후보들 중에 눈에 띌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 '꿀꿀이죽 사태' 이후, '영유아보육조례' 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사립 어린이집은 숫자로 볼 때 국공립 어린이집보다 훨씬 많고, 이미 세력화되어 있다. '꿀꿀이죽 사태' 이후 주민들의 서명으로 제출된 '강북구 영유아 보육 조례 전부 개정안'이 의회 상임위원회에 아직 계류 중이다. 당시 구청이 개정안을 상정했지만, 4대 의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폐기됐다. 결과를 보고 주민대책위에서 강력히 항의했고, 5대 의회에 다시 상정됐다. 당시는 출산 휴가로 자리를 비운 때였다.

안건이 상정되는 날, '사립 어린이집 연합회' 소속 60여명의 원장들이 '악법 보육조례'라는 어째 띠를 두르고 의회에 왔고 본인에게도 강력하게 항의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주민 발의안'답게 의회에서 조용히 처리하지 않고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반대의 목소리만 낸다는 비판도 있다. 다른 의원들, 구청 관계자를 독려하는 전략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칭찬도 한다. 강북구에도 훌륭한 공무원들이 많다. 특히 동사무소나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들에게는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내용에 따라서는 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안건을 발의하려면 본인 이외에 최소 2명의 의원동의가 있어야 하니까. 반대를 위한 반대는 본인에게도 민주노동당에게도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단, 그간 구청의 행정이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보다는 행정 편의 위주의 구태를 답습해 온 탓에, 의원으로서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다 보니 반대의 목소리만 들릴 수도 있다. '쓰레기봉투 값 인상 건의' 처리과정은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의정 활동비 지급, 정당공천제... 지방의회는 변신중
강북구 의회 4월 임시 의회 탐방기

▲ 강북구 임시 의회 개회에 앞서 참석한 의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육중하게 울려 퍼지는 애국가, '순국선열 전몰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이어지는 개회식, 낭송하듯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낯선 의회의 용어들, 수없이 두들겨지는 의사봉 소리는 순간 종교 의례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 지방 의회 본회의장은 엄숙주의와 경건주의로 가득했다. 지난 25일 강북구 임시 의회 본회의 풍경이다.

"황사가 심한데 건강 유의하십시오. 또한 재선충이 극성입니다. 구청장님 이하 재선충 피해가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운영위원장의 의례적인 인사가 오히려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본회의는 의회 사무국에서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거의 진행되는데, 의원의 자율성이 인정되는 유일한 순서라고 한다.

금번 임시의회에서 '통반 설치 조례 일부 개정 조례'를 제출한 박영복 의원의 얘기를 들어 보았다. 미아동을 관할하는 박 의원은 "지난 50년간 지역 일선에서 수고해온 통장들의 모임이 통친회, 즉 통장들의 친목 단체로 격하되었다"며 공식 협의회로 개명하자는 조례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통장협의회로 이름을 바꾸는 안이다.

이미 새마을 연합회니 적십자 연합회니 하는 대부분의 지역 모임이 연합회로 불리는 마당에 통장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차원에서라도 모임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례가 통과되면 그야말로 거대한 공식 조직이 지역에 하나 더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지방 의회 5기 체제 출범은 시작부터 참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중 지방의원 의정활동비의 유급화는 가장 이목을 끈 사안 중에 하나였다. 그에 걸맞게 각 지방 의회에서 '일하는 의회'를 보여주고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통상, 지방의회 80일, 광역의회는 100일로 회기가 정해져 있다가 5기 들어서면서 각 의회가 회기 일수를 정하도록 지침이 바뀌었다. 강북구 의회의 경우, 운영위원회에서 의욕적으로 회기를 늘려 보고자 했으나 일단 해보면서 차츰 늘리는 쪽으로 방침을 정해 올해는 5일 늘린 85일로 정했다. 의정활동비의 경우 예전에 월 150만원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260여만원 정도라고 한다.

유급화 말고도 몇 가지 변화가 더 있다. 정당 공천제와 중선거구제. 미아동을 관할하는 최선 의원은 "대부분의 의원이 정당 공천을 받기는 했지만 '당성(堂性)'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역사람이라는 인식이 앞선다는 것이다.

그보단 중선거구제가 더 실질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사무소야말로 일차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단위다. 한 동사무소에 배속된 기초의원이 3명, 비례의원이 2명이니 행사 때마다 일일이 보고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대여섯 동사무소를 담당하는 기초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챙겨야 할 행사가 몇 배나 많아 졌다.

현재 강북구 의회에는 총 4개의 선거구에 3명의 기초의원, 강북구 비례대표 2명을 더해 총 14명의 의원이 활동 중이다. 한나라당 소속은 7명, 열린우리당은 5명, 민주당, 민주노동당 각각 1명이다. 전국 평균에 가깝다.

강북구 의회 김흥수 사무관에 따르면 의원발의 조례 건수가 미약하나마 평균을 웃돌고 있으며, 의원들의 자체 세미나도 많아졌다고 한다. 아직 10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미미한 수준일 수 있지만 예전과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고. 변화란 그렇게 조금씩, 슬그머니 찾아오는 걸까?

덧붙이는 글 | 김형우 기자는 '시민기자 기획취재기자단' 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형우 기자는 '시민기자 기획취재기자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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