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토요일 동해에서 '단합대회'를 연다고 한다. 일터 식구들은 저마다 신이 났다. 그럴 만도 한 게 내가 여기에서 일한 지 어느덧 일곱 해가 되었는데, 요즘 웬만한 곳은 다 한다는 '주5일근무제'도 우리한테 아주 먼 나라 얘기이다. 주 5일은커녕 가끔 일요일도 나와서 일을 한다.
더구나 내가 맡아 하는 일이 몸이 아파도 쉴 수 없는 처지라 이런 날은 그야말로 금쪽같은 날이다."단합대회도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가야 한다!"라는 사장님 말씀에 무척 미안했지만 이 기회에 자전거를 타고 제법 멀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결근이라고 해도 저는 못 갑니다. 미안합니다.
"어쨌든 남편과 함께 '자전거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소중하고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지난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자전거 나들이한 얘기를 풀어 본다.
어디로 갈까?
며칠 앞서부터 자전거로 이틀 동안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어딜까? 하고 남편하고 머리를 맞대며 생각한 데가 바로 경북 의성이에요. 여기는 예부터 선비의 고장이라 소중한 문화재가 꽤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짧은 시간에 자전거로 다녀야 하기에 계획을 잘 세워야 했지요. 구미에서 의성까지 적어도 60km는 되더군요.
먼저 문화재나 볼거리가 있는 곳을 몇 군데 뽑았어요. 가장 멀리 가서 차례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둘러보려고 해요. 그렇게 해야 짧은 시간에 맞춰 구경할 수 있으니까요. '고운사'부터 가려고 마음먹고 26일 아침 6시, 눈을 뜨자마자 집을 나섰어요. 김밥 석줄 사 가지고…….
구미에서 장천면까지 가는 데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른 아침부터 운동(?)을 한 때문인지 슬슬 배가 고팠어요. 어느 마을 다리 밑에서 김밥을 맛나게 먹고 다시 자전거 발판을 밟아요. 한여름도 아닌데 땀방울이 맺히고 후텁지근합니다.이윽고 첫 번째 고갯길, 장천면 '오로저수지'로 가는 길인데 웬만한 오르막은 이제 가볍게 올라갈 수 있어요. 우리도 자전거 타는 솜씨가 알게 모르게 많이 쌓였나 보다! 하며 즐겁기만 해요.
장천면에서 군위를 거쳐 의성에 닿아...
제법 넓고 긴 오로 저수지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낚시꾼 몇 사람이 보여요. 시원한 풍경을 놓칠 수 없어 잠깐 멈추어 사진을 찍었어요. 오르막과 내리막을 몇 번 오르내리니 어느새 군위 땅에 닿았네요.여기부터는 길도 잘 모르고 오로지 이정표만 보고 달려야 해요.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고 왔는데도 막상 와 보니, 여기가 어딘지 헛갈리네요. 덮어놓고 의성 쪽만 보고 달렸어요.5번 국도로 들어섰는데 갓길은 좁아도 생각보다 차는 적었어요.
그렇지만 어찌나 쌩쌩 달리던지 우리는 바짝 긴장하며 갔어요. 그래도 곧은길이라서 자전거는 무척 잘 나가더라고요. 이윽고 국도 건너편으로 의성 나들목이 보이고, 이 지역 자랑거리인 마늘을 알리는 '의동이' 홍보탑이 보여요.
"야! 드디어 의성이다!"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면서 달렸어요. 어느새 시계는 11시 30분, 거의 네 시간쯤 김밥 석 줄 먹고 달린 거예요. 건너편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 셋이서 인사하며 손을 흔들어요. 자전거 타는 이는 어디를 가나 이렇듯 반겨 주니 퍽 흐뭇했어요.의성읍에 들어서니, 낮은 언덕 위에 '문소루'가 우리를 맞아 주네요. 의성의 옛 이름이 '문소'였다고 하네요.
이제 두 갈래 길, 어느 쪽으로 갈까?
의성에 들어왔으니 '고운사'로 가기에 앞서 잠깐이라도 읍내를 돌아보고 싶어요. 국도에서 벗어나 오른쪽으로 들어왔어요. 의성역과 군청이 보이고 대충 둘러봐도 그리 복잡하지 않은 작은 읍내 풍경이 매우 정겨웠어요.이제 고운사를 찾아가야 하는데 어느 길로 가는 게 좋을까?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으니, 우리가 왔던 국도를 따라 그대로 가도 되고, 또 다른 길인 점곡, 청송 쪽으로 가도 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고운사는 한참 가야 한다면서 자전거 타고 갈 수 있을까? 하고 놀라는 낯빛이에요.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벌써 70km가 훌쩍 넘었는데 얼마나 가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어요.
"점곡 쪽으로 가자!"
"엥? 그럼 너무 멀지 않을까?"
"저기 국도는 빠르기는 해도 너무 위험하고 재미도 없잖아. 어차피 이틀 동안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가지 뭐. 자전거 타는 재미로 다니는 건데 좀 돌아가면 어때."
남편은 곧고 빠른 길보다 둘레 풍경도 구경하면서 가자고 돌아가는 길로 먼저 앞장서서 가고 있어요.
"그래. 까짓것 돌아봤자 얼마나 돌아가려고…."
점곡. 청송 쪽으로 들어서니, 한적한 시골 풍경이 퍽 정겨워요. 지나가는 차도 그다지 없어 느긋하게 발판을 밟으며 갈 수 있어요.
어이쿠! 오르막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여러 차례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났는데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보여요. 햇볕은 어찌나 뜨거운지 맨살이 드러난 다리는 벌써 벌겋게 익었어요. 색안경 너머로 보니, 햇살은 얼마나 눈 부시고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어찌나 뜨거운지…….
굽이굽이 모퉁이를 얼마나 돌았을까? 끈적끈적한 오르막이 끝없이 길게 느껴지고 여기를 돌면 이제 다 올라왔겠지? 하면 또 오르막이고, 또…. 얼마나 올라왔을까? 드디어 꼭대기가 보이고 널따란 잔디밭에 쉼터가 보여요. 잠깐 쉬면서 물과 빵 한 조각씩 먹었어요.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어찌나 가파르든지 여기까지 올라온 게 대견스러웠어요.
드디어 고운사 가는 이정표가 보여요! 벌써 두 시가 다 되었고 어디에서라도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점곡' 마을에 들어가 밥을 먹으면서 고운사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어요. 아직도 더 가야 한다면서 자세하게 알려주더군요. 또 바로 옆에 가면 '사촌마을'이라고 있는데 거기도 꼭 둘러보고 가래요."예? 사촌마을이 여기 있다고요?"우리가 찾아가기로 했던 곳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깜짝 놀랐어요. 마음먹기에는 고운사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가려고 했는데, 거꾸로 왔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사촌마을'을 먼저 가게 된 거예요.
옛 전통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사촌마을'
사촌마을은 안동 김씨와 풍산 유씨들이 사는 집성촌인데, 전통 옛집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에요. 더러는 새롭게 고치거나 짓기도 했지만 마을 전체가 옛날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고 있어요.마을 들머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누런 흙길이에요. 옛집을 여러 군데 다녀 봤지만, 마을 전체를 흙길로 해 놓은 곳은 처음 봤어요.
또 차도 1톤이 넘으면 못 들어가게 하더군요.집집이 앞에는 텃밭이 있고, 상추랑 고추, 마늘 따위를 심어 놓았어요. 나무로 엮어 만든 사립문도 있고, 문 안에는 변소가 따로 있어요. 집은 마루가 가운데 있고 앞뒤로 트여 있어 여름에 거기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저절로 잠이 들 거 같아요.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에 홈을 내어 서로 끼워 맞춰 놓았어요. 그리고 네 귀퉁이에 주춧돌을 세워 그 위에 올려놓은 건데도 오랜 세월을 견디며 버티고 있는 게 퍽 놀라웠어요.마을 한가운데에는 '만취당(경북유형문화재 169호)'이 있는데,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였던 김사원이 선조 15년(1582)부터 세 해에 걸쳐 만들고 자기 호를 따서 이름 붙인 대청이에요. 집이 매우 크고 이 마을 자랑거리이기도 합니다.
또 나이가 500살이나 된 '사촌리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07호)'가 꽤 멋스러워요.마을을 벗어나 끄트머리에 또 다른 볼거리가 있네요. 바로 '사촌마을 가로숲(천연기념물 405호)'인데요. 지난날 마을로 불어 닥치는 샛바람을 막아 이곳 사람들 삶터를 보호하려고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따위를 심었어요. 이 나무들은 모두 400~500살쯤 되었다고 해요. 이 가로숲에 가까이 가니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흐르던 땀이 싹 가시네요.
다음 다섯 번째 이야기에는 '고운사'와 얼마 앞서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 댁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2007.05.30 09:0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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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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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단합대회 있는 날, 자전거 타고 옆길로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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