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열이는 추모제라도 열리지만"

[현장] 20주기 추모제... 어머니 "수많은 한열이가 지켜보고 있다"

등록 2007.06.09 19:08수정 2007.06.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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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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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을 대표해 배은심 어머니가 무대에 오르자, 추모제 참석을 위해 상경한 이한열 열사의 모교 광주 진흥고 학생들이 "어머니!"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세상은 밝고 맑고 명랑하지만, 그렇다, 한열아, 우리는 20년 동안 그 날, 너의 주검과 만났던 단 하루의 경로를 다 이루지 못했다. 너의 죽음으로 오늘, 죽음은 스무 살 청춘의 나이를 먹는다. 너의 죽음으로 이 시대 청춘은 이리 밝고 명랑하다." <김정환 시인의 '거룩한 젊은 몸' 중에>

그랬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밝고 명랑했다. 그들만큼 하늘도 모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그러나 무대에 선 고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씨는 한숨을 몰아 쉬었다. 다시 한 번 "어머니!"가 울려 퍼지고, '어머니'는 입을 열었다.

"제2, 제3, 제10의 이한열이 우릴 내려보고 있다"

"조금 있으면 시청 앞 시계 바늘이 5시가 된다. 우리 한열이가 전두환 정권이 쏜 최루탄 직격탄에 머리를 맞은 시간으로 알고 있다. 내가 한열이에게 그랬었다. 하더라도 제발 뒤에서 (시위)하라고. 그런데 한열이는 엄마 말을 안 들었다. 우리 한열이가 시위대열에서 신나게 자주와 민주를 부르짖었을 것이라 믿는다."

9일 오후 4시에 열린 추모제 무대에서도 모처럼 '밝고 명랑한 이한열'이 참가자들을 맞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열이가 파카 입고 무등산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이라며 "영정 사진을 보면서 후배들이 시무룩하지 않도록, 활짝 웃는 사진을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똑똑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어진 '어머니'의 말은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배은심씨는 "우리 한열이는 그래도 여러분이 추모제를 열어줬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제2, 제3, 제10의 이한열이 민주화 과정에서 허공에 떠있다, 지금 여기 시청 앞 광장 위에서 그들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열사'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또 배씨는 "어떤 이는 민주화운동했다고 심의 과정에서 인정받았지만, 또 어떤 이는 분명 '민주'를 외치다 죽었는데도 현장에서 죽지 않았다고 또는 집에서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유명한 장준하 선생님을,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뻔히 알면서도 기각했다"고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 인정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심의위원회(민보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배씨는 "독재 하수인들이 진급 따려고, 밥 한 술 더 먹겠다고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서 사람을 데려다 죽인 것이 의문사"라며 "자식들도 불쌍하지만 10년 또는 20년 동안 부모들의 피를 토하는 심정은 불쌍하고 가엾다"는 말로 '민보위' 결정을 거듭 문제삼았다.

끝으로 "엄혹했던 세상에서 내 몸 하나 바쳐 많은 이들의 눈을 뜰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인 만큼, 심위의원회의 공평한 심의를 당부한다"고 말을 마친 '어머니'는 잠시 돌아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무대에서 내려갔다.

"6월 항쟁에 무임승차하고, 민족지도자까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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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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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추미애 전 의원과, 김근태 천정배 의원,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날 추모제에서 우상호 의원은 "이한열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내일 시청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장례식을 통해 시청에 올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 20년이 지나 시청 앞에서 추모식을 거행하는 광경이 참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인사말을 열었다.

이어 경과보고를 하던 중에 우 의원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한열이도 지금 하늘에서 지켜 볼 것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한열이란 이름을 마음에 안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오충일 목사(6월민주항쟁20년사업위원회 오충일 공동대표)는 추도사를 통해, 현재를 "민주 항쟁 성과물을 폄하하는 시국"으로 규정하고 이른바 보수 세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 목사는 "우리 모두가 전국에서 맨 손으로 고문과 최루탄을 이겨내며 얻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누가 이 귀한 열매를 폄하하는 자가 누구냐"면서 "여기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이 민족지도자가 되겠다고 활개치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 것이냐"고 외쳐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오 목사는 "한 때 우리를 '좌익' '불순'으로 몰던 세력들이 다시 지금 우리를 보고 '좌경'이라 하고 '좌파 10년이 나라를 망쳤다'고 외치는 현실에서 이한열 열사 20주기를 추도하기 위해 모였다는 자체가 한편 부끄럽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 열매를 모르게 하는 과정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오 목사는 "6월 항쟁 열사들의 이름을 민주주의가 확장하고, 남북 통일이 될 때까지 불러야 할 것"이라며 "이한열"을 선창했고, 이에 참가자들 역시 "이한열"을 외쳤다.

박종철·이한열 모교 후배들도 참석

한편 이한열추모사업회, 연세대 고 이한열20주기 추모제 기획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민주항쟁 20년 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추모제는 다양한 기획과 연출(김정환)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인에 대한 묵상 시간에는 고 이한열 장례식 날에 열사들의 이름을 외치던 고 문익환 목사의 육성과 함께 "안녕하세요, 이한열입니다"라는 젊은이들의 음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의미를 되짚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고 박종철의 모교인 부산 혜광고 학생들과 고 이한열의 모교인 광주 진흥고 학생들이 추모제에 참석해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으며, 이에 대해 고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씨는 "정말 감동받았다"며 "우리 한열이도 이제 진흥고 동문"이란 말로 감사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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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김근태 천정배 의원 등 정계 인사들이 '아침이슬'을 합창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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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 참가자들이 '아침이슬'을 합창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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