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발 자전거 사준 할머니 생각나"

아들 자전거 사주면서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딸

등록 2007.06.13 17:52수정 2007.11.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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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진이 지난주 일요일(10일)에 두발자전거 사줬어. 이젠 세발자전거 타기 싫다면서 어찌나 조르던지. 우진이 자전거 사주면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나한테 자전거를 제일 처음 사준 사람이 할머니잖아." "그랬니. 잘했다. 그런데 우진이가 두발자전거는 잘 타니?""신기한 것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진짜 잘 타. 어제(12일) 저녁내 자전거를 정신없이 타더니 피곤했는지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8시부터 곯아떨어졌어. 벌써부터 보조바퀴를 뗀다고 난리야.""아직은 위험할 텐데?" "일주일 정도 타는 거 봐서 떼어 준다고 했어."딸아이와의 전화를 끊고 나니 나도 그때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딸아이가 4~5살 무렵 손녀 손을 잡고 할머니는 시장구경에 나섰다. 어린 손녀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린 손녀는 장난감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을 구경하기 시작했다.그러다 세발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신기해한 어린 손녀는 자전거를 보더니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마음에 꼭 들었나 보다. 한참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할머니 나 이 자전거 사줘" "여자아이가 무슨 자전거야. 할머니가 인형이나 소꿉놀이 사줄게" "인형 싫어. 자전거 타고 싶어" 할머니는 몇 번이나 다른 장난감을 사준다고 했지만 어린 손녀는 다른 장난감은 싫다면서 드디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자전거만 사달라고 떼를 썼단다.딸아이는 우리 친정집에서 제일 첫 손녀라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때였다. 어린 손녀가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니깐 할머니는 조금씩 모아둔 용돈에서 거금을 꺼내어서 손녀 자전거를 사주게 되었다. 그러기 전까지는 자전거 근처도 가보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러니 할머니가 사준 세발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한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할머니가 힘들게 밀고 어린 손녀는 얼굴 한가득 함박웃음을 띠고 의기양양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손녀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손녀의 자전거를 사준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얘가 평소에는 순한 줄만 알았더니 지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니깐 어디에서 그런 고집이 나오는지 나도 깜짝 놀랐다" 하시면서도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그리곤 딸아이는 한동안 익숙해질 때까지 자전거 타기를 배우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 후로도 장난감가게 앞을 지나면 할머니는 어린 손녀의 그런 행동이 생각나 그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었다. 딸아이도 할머니가 생존에 계실 때에는 그런 모든 일상들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할머니가 안 계시니깐 그런 모든 일들이 할머니를 추억하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먼 훗날 손자들에게 비추어질 내 모습을 그려봤다. 할머니인 난 손자들에게 과연 그렇게 아름답고 예쁜 추억으로 남을 만한 일을 했었던가. 그동안 나는 손자들을 진정 많이 사랑하고 있었나? 앞으로 어린 손자들을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그렇게 사랑은 대물림인가 하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신나고 재미있게 자전거를 타는 씩씩한 손자의 모습이 빨리 보고 싶어진다. 딸아이가 전화를 끊으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엄마 며칠 전 꿈에 할머니가 환하게 웃더니 이러려고 그랬나 봐. 할머니가 보고 싶네."
2007.06.13 17:52ⓒ 2007 OhmyNews
#세발자전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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