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금연투사'... 담배 피우면 빼앗습니다"

[해외리포트] 흡연과의 전쟁 벌이는 중국 장유에씨

등록 2007.06.22 16:19수정 2007.06.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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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충칭(重慶)시를 방문해 흡연자의 담배를 빼앗는 방식으로 금연운동을 펼친 장유에씨. 장씨의 충칭 방문도 벌써 3번째다.
지난 5월 19일 충칭(重慶)시를 방문해 흡연자의 담배를 빼앗는 방식으로 금연운동을 펼친 장유에씨. 장씨의 충칭 방문도 벌써 3번째다.충칭만보

지난 20일 중국 톈진(天津)시에서 가장 번화가인 빈장다오(濱江道) 보행가. 간간히 빗방울이 흩날리는 길거리에서 한 반백의 중년 남성으로 인해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정체 모를 남성은 한편으로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흡연하는 사람들의 담배를 낚아채는 기행(奇行)을 펼쳤다. 순식간에 달려든 낯선 이에게 피우던 담배를 강탈당한 흡연자들은 황당해했지만, 이내 소동을 일으킨 사람의 정체를 알고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흡연자는 욕을 하고 실랑이를 벌이긴 했지만.

초라한 행색에 볼품없는 기색의 중년 남성은 장유에(張躍·47)씨. 중국에서도 낙후한 성시인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시 출신인 그는 직업이 없는 무직자다. 학력이 낮고 가난한 장씨는 요즘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다.

'금연투사'(反煙鬪士), '중국 첫 번째 금연운동가'(中國反煙第一人)…. 시골 촌뜨기인 장씨에게 중국 언론매체가 붙인 칭호는 명예롭고 거창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일 하루 동안 빈장다오에서 '금연투사'는 흡연의 유해성을 알리는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수십 명한테 100개비의 담배를 빼앗았다"고 보도했다.

피우는 담배 빼앗는 '금연투사'의 이색 금연운동

장유에씨의 금연운동은 무례할 뿐 아니라 개인 재산을 침탈하는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장씨는 이런 방식이 흡연자에게 더 호소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장씨가 톈진에서 금연운동을 펼치는 모습.
장유에씨의 금연운동은 무례할 뿐 아니라 개인 재산을 침탈하는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장씨는 이런 방식이 흡연자에게 더 호소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장씨가 톈진에서 금연운동을 펼치는 모습.신화통신
땅을 일구던 농민이었지만 한때는 사업으로 제법 재산을 모았던 장유에씨가 '금연투사'로 나서게 된 계기는 여동생의 죽음이다. 1988년 아끼던 여동생이 폐암을 앓다가 어린 나이에 죽자, 장씨는 그 사망 원인을 찾아나섰다.

오랫동안 애연가였던 아버지로 인한 간접흡연 부분에 의혹을 품은 장씨는 1996년 영국의 한 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를 읽게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가 흡연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폐암에 걸리는 비율은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2배 이상 높다는 것. 자신의 추측이 연구 조사로 증명되자, 장씨는 흡연 추방을 위한 금연운동에 참가했다.

10여 년 동안 주변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금연을 권유하던 장유에씨는 자신의 소극적·국지적 금연운동이 별로 실효성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2001년 11월 생계까지 내팽개치고 장씨는 '전업' 금연운동가의 길을 나선다.


그때부터 장씨는 자비를 들여 허난성을 시발로 중국 전역 200여 개 성시를 떠돌면서 전투적인 '금연투사'로 강제적인 금연운동을 벌였다. 단순히 금연을 호소하는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흡연하는 사람들의 담배를 빼앗고 흡연의 유해성을 알리면서 흡연자와 설전을 벌이는 장씨의 금연운동방식은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장씨는 "한때 피우는 담배를 강탈하는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며 욕하고 반발했다"면서 "지금은 대다수 사람들이 내 운동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며 지지한다"고 말했다.

공공장소에서 흡연은 주변 사람에게 간접흡연이라는 큰 폐해를 끼치고 있다. 중국에서 간접흡연 사망자는 매년 10만 명에 이른다.
공공장소에서 흡연은 주변 사람에게 간접흡연이라는 큰 폐해를 끼치고 있다. 중국에서 간접흡연 사망자는 매년 10만 명에 이른다.모종혁

3억5000만 흡연자에, 간접흡연 피해자만 5억4000만

중국 정부가 최초로 발표한 흡연상황 조사보고서인 '2007년 중국흡연 통제보고.'
중국 정부가 최초로 발표한 흡연상황 조사보고서인 '2007년 중국흡연 통제보고.'
중국은 세계 최대의 담배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중국 애연가들의 손끝에서 타들어가는 담배는 매년 1800조 개비로, 세계 2~7위 담배 소비국의 소비량을 모두 합친 것과 같다.

지난달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앞두고 중국 위생부가 발표한 '2007년 중국흡연 통제보고'(아래 '보고')에 따르면, 13억 중국인 가운데 3억5000만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간접흡연의 피해를 보는 사람들만도 5억4000만 명에 달한다. '보고'는 "중국에서 흡연 관련 사망자만 해마다 120만 명에 달하고 간접흡연을 인한 사망자도 매년 1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보고'는 "15세 이상 남성의 60%, 여성의 4%가 담배를 피운다"면서 "여성의 흡연율도 5~8%씩 매년 높아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보고'는 또한 "흡연 연령층은 낮아지는 추세로 전국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의 남학생 흡연율은 각각 46%, 45%, 34%에 달한다"면서 "청소년 흡연자가 5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경고했다.

장이팡(張義芳) 중국금연협회 회장은 "중국인들은 흡연이 건강에 끼치는 해독에 무지해 흡연 연령층이 갈수록 연소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의 청소년 흡연실태조사에서는 첫 흡연 연령이 남성 13.5세, 여성 12.9세로 각각 나타났다.

2020년 흡연 관련 사망자만 1000만명에 이를 전망

간접흡연으로 인한 폐해는 위험수위에 도달하고 있다. '보고'에서는 "여성의 90%가 가정에서 간접흡연을 당하고 남성도 공공장소와 직장에서 쉽게 간접흡연을 당하고 있다"면서 "15세 이하 1억8000만 명에 달하는 청소년과 어린이들도 간접흡연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의 흡연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흡연에 대한 제지가 거의 없는데다,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통제할 강력한 법규가 없어 중국은 비흡연자들에게 악몽이 되고 있다. '보고'는 "흡연 통제를 강화하지 않을 경우 2020년에는 흡연 관련 사망자가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도 흡연 피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자구 노력을 하고 있다. 중국 위생부는 국무원의 위임을 받아 공공장소의 금연을 법제화하는 '공공장소위생관리조례' 개정에 나섰다. 지난 5월 중순에는 '베이징 2008년 금연올림픽방안'을 내놓았다. 내년 베이징올림픽 개회 전후 8개 공공장소에서 전면 금연을 실시하게 된 것.

같은 달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는 모든 공공장소에서 금연을 시행하고 흡연 시 100위안(한화 약 1만2000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금연조례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도 금연조례를 개정하고 공공장소에서 흡연 시 20위안의 벌금을 부과토록 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담배 생산국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생산·판매되는 담배 브랜드는 수백 가지에 달한다.
중국은 세계 최대 담배 생산국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생산·판매되는 담배 브랜드는 수백 가지에 달한다.중국연초담배협회

흡연은 남성다울 뿐 아니라 멋진 행위라고 생각하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흡연을 부추기고 있다.
흡연은 남성다울 뿐 아니라 멋진 행위라고 생각하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흡연을 부추기고 있다.모종혁

다양한 흡연 제재 움직임... 그러나 실효성은 낮아

그러나 흡연 제재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은 낮아 보인다. 일부 성시에서 공공장소 금연조례를 시행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지역은 금연운동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중국 전역에서 금연이 규정된 것은 항공기,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일 뿐 직장, 학교, 음식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선 아직 별다른 제재가 없다.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흡연자를 갑자기 제재할 경우 생길 파장도 문제다. <신화통신>은 한 담배전매국 고위관리의 입을 빌어 "중국엔 흡연자가 너무 많아 강력한 금연정책을 취할 경우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담배 생산과 판매가 지방정부의 세수 확보에 큰 도움을 주는 것도 금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 헨크 베케담 세계보건기구(WHO) 중국사무소 대표는 "중국은 국가가 담배 생산을 독점해 흡연 규제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담배세 인상으로 담배 판매가를 높이고 세수를 늘려서 흡연율을 낮추는 조치를 취할만하다"고 지적했다.

장유에씨도 "중국인들에겐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거나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다"면서 "흡연자를 강력하게 제지하고 그들과 싸워야 흡연의 유해성을 제대로 인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흡연을 탓하기 이전에 그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피해를 끼친 어른들의 책임이 크고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오늘도 대륙 곳곳을 누비며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금연투사'의 기인 행각이 13억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톈진에서 금연활동을 펼친 장유에씨는 다음 목적지인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로 발길을 돌렸다. 장씨는 자신의 신념과 목적을 위해 중국 대륙을 주유하고 있다.
톈진에서 금연활동을 펼친 장유에씨는 다음 목적지인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로 발길을 돌렸다. 장씨는 자신의 신념과 목적을 위해 중국 대륙을 주유하고 있다.신화통신
#장유에 #중국 금연운동 #간접흡연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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