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은 흔히 서양 문명의 기원이라고 일컬어지곤 한다. 그것은 서양 문명의 우월성의 기원을 로마제국에서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우월성의 가치에 대한 평가적 상대성을 떠나서라도 로마제국은 서양 문명의 보편적 성격을 지닌 첫 제국이었다는 점에서 한번쯤 고찰해 볼 가치가 있다.
로마는 서구 실용주의 사고의 정점에 있었다. 로마의 문화가 실용주의적 합리성의 관점에 터를 두고 있다는 것은 로마의 건국 신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두 형제 중 한 명이 계약을 통해 성립된 자신들 근거지의 '경계'인 도랑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그 '경계'를 침범한 형제를 죽였다는 로마의 건국 신화에는 로마적 세계가 계약을 통해 성립된 사회라는 것, 그러한 계약은 약탈경제에서 나타나는 문화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로마의 대외정책은 로마적 세계의 합리적 실용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로마적 세계의 합리적 실용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로마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적 제국의 보편성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읽음으로써 현실 세계의 로마 제국이라 할 수 있을 미국의 특장을 유비시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천년의 차이가 두 제국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미국이라는 제국은 두 차례 패권국간의 전쟁인 세계대전이라는 서구 패권주의의 결실에서 생겨난 것이요, 그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서양 문명의 첫 패권적 제국이었던 로마의 성격을 잘 계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로마적 세계의 표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인 로마의 대외정책과 미국의 대외정책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두 제국 사이의 이천년의 세월의 격차를 제외하더라도, 대외정책은 한 나라의 일방적인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당대 여러 나라들과의 상대적 반응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 나라의 대외정책이 꼭 그 나라의 정체성이나 세계관을 그대로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두 제국의 대외정책의 세부적 사항을 항목별로 파악해 나가는 섬세한 접근과 역사를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이 동시에 필요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신은 세부에 깃들여 계시기' 때문이다.
인류의 기축 문명은 동서를 막론하고 약탈경제로부터 성장했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노예경제를 기반으로 해서 성립됐으며, 로마가 누린 경제적 풍요 역시 노예경제와 식민지역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약탈경제를 토대로 세워진 나라들에서는 자신과 타자의 경계선이 명확하다. 전쟁을 통해 얻은 노획물은 공과에 따라 나누어 가졌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자 자신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을 '덕'이라고 칭했을 정도이다.
약탈 경제 사회에서는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나 용납할 수 있는 실용적 풍조가 생겨난다. 윤리란 자아와 타자, 자아와 사회 사이에서 성립되는 것인데, 약탈경제 사회에서는 각자의 밥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약속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한 '경계'를 넘지 않는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었다. '너희 이웃의 집(의 아내)을 탐내지 마라'는 모세의 계명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로마뿐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윤리이지만, 모든 인간의 비극은 인간이 자신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타인에게로, 타인의 소유물에게로 다가가고 싶다는 욕망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점에서부터 기인한다.
로마라는 국가는 고대사회에서 가장 완벽한 제도를 갖춘 불멸성 보장체제였다. 국가는 어느 정도 자격만 갖추면 거의 모든 이에게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자격을 주었고, 로마의 시민권 정책은 로마가 보편 제국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면서, 로마라는 경계선 안에 들어 있는 인간들에게 로마의 이름으로 불멸성을 보장해주겠다는 징표였다(책과 세계, 강유원, 살림, 2004, 52쪽).
로마의 대외정책의 핵심은 시민권의 부여라는 제도를 인류 최초로 제국적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고대의 시민권이란 바로 그 나라의 국방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시민권을 얻는 것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칼로 점령한 식민지인들에게 침탈을 한 본국을 지키기 위한 칼을 쥐어준다는 발상의 전환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는 로마만의 제국적 개방성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비롯해 제국의 외형을 갖춘 것은 로마 전후에도 존재했으나 로마와 같이 시민권제도를 통해 제국의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이루어낸 체계는 역사상 로마가 유일하다. 이러한 시민권 부여를 통한 개방적인 대외적 동화정책은 로마를 유일무이한 보편 제국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로마의 동화정책은 앞서 언급한 로마적 실용주의에서 비롯되었다. 로마의 법률 대부분이 사적소유권에 관한 것이며, 현존하는 로마 문서의 대부분이 분쟁에 대한 판결문이라는 사실로 알 수 있듯이, 로마라는 국가의 '경계' 안에서 로마 시민들은 사적소유라는 '경계'를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무한히 행복해질 수 있었다.
로마의 대외정책의 제국적 약탈성에 대한 비판을 잠시 미루어둔다면, 로마의 대외정책은 '모든 인간을 로마의 시민으로'라는 미끼로 안정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해낸 제도적 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인간은 당장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혁명을 하기보다는 그 불만을 해소시킬 눈앞의 가능성에 더 이끌리기 때문이다. 이런 대외정책은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제도적으로 변화해가면서 변경지역에 대한 공세에서 수세로 방어형태를 바꾸어나가는 시대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로마의 제국화 정책은 동화(同化)의 변증법적인 지양의 현실태라고 할 것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고립주의와 개입주의를 반복적으로 오간다. 미국이 자신의 기원이었던 유럽에 대한 열등감으로 고립주의에 빠졌다면,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유럽을 추월하기 시작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정세에 대한 개입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개개 국가의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외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윌슨의 상대성 외교정책은 여전히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이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세계제국으로서 미국이 자신만의 위상과 대외정책을 가진 것은 그리 길지 않다. 냉전시대와 탈냉전시대,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시장 국제주의(market internationalism)'이다. 냉전시대에는 시장주의의(칠레나 파나마 정권에 대한 쿠데타 지원으로 보건데 '민주주의'라는 말은 맞지 않다) 이데올로기로서, 탈냉전시대에는 자국의 경제적 이권을 위한 시장 국제주의적 정책인 것이다.
탈냉전시대의 혼돈을 '관망자(spectator)' 역할로 만족한 미국이 대외적으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벌인 것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탈냉전, 세계화, 그리고 미국의 외교, 김봉중, 미국사 연구, 한국미국사학회, 23호(2006) 118쪽), 클린턴 시대를 거쳐 미국이 적극적 외교보다는 경제적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을 펴나갔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국제 사회와의 동조와 협조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철저한 일방주의 외교의 세계화라는 것이 미국의 대외정책의 실제적 모습인 것이다. 쿄토 의정서(Kyoto protocol)나 반탄도탄미사일조약(ABM Treaty)에서 미국이 탈퇴한 것이 그 예일 것이다. 부시가 교토 의정서 탈퇴의 변으로 "우리는 우리의 경제에 해를 가할 짓은 어떤 것이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우리 국민들이기 때문이다"(탈냉전, 세계화, 그리고 미국의 외교, 김봉중, 미국사 연구, 한국미국사학회, 23호(2006) 138쪽)라고 말한 것을 보면 미국의 대외정책이 얼마나 협소한 자국중심주의로 기울어져 있는가 확실히 알 수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로마의 그것과 다른 것은 철저한 차별과 배제의 시스템에 토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의회에서 이민자 체류법이 부결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자국의 경제를 위해서 선별된 인력만을 수용하겠다는 정책이 미국 스스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국으로 유입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체제 유화적, 체제 지향적인 행동과 이익들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배제 시스템으로 인해 강제적인 수취나 약탈경제로 다시금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작금의 현실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부인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현실을 통해 미국외의 지역 사람들이 치루어야 될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로마와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교하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두 나라 모두 약탈경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거대한 체스판>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석유 등의 자원에 대한 자본과 군사력을 동원한 착취, 약탈경제를 기반으로 하여 막대한 부와 군사적 헤게모니를 장악, 축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실제로는 1989년에 이미 채권국가에서 채무국가로 변했으며, 해외채무만도 5천만 달러를 넘어서 있다(탈냉전, 세계화, 그리고 미국의 외교, 김봉중, 미국사 연구, 한국미국사학회, 23호(2006), 126쪽).
그러한 미국경제가 아직까지도 존속할 수 있는 것은 달러 중심의 기축 통화체제를 통해 해외자본들을 끊임없이 미국으로 유입시키기 때문이다. 외부 자본의 유입은 아직까지 미국이 제국으로서 건재하다는 주변국들의 믿음에서부터 기인하는데, 그 믿음의 근거가 바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실행하는 군사적인 힘에 있다. 이는 로마제국의 붕괴의 원인인 '정복과정의 효율성 감소와 약탈전쟁에서의 채산성 악화로 인한 재정 악화(서양 문명의 기반: 철학적 탐구, 강유원, 미토, 2003, 62쪽)'의 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멸망에 이르기 전에 이미 '패기를 잃었고, 자신감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는데, 작금의 세계제국으로서 미국 역시 건국 초기의 퓨리타니즘적 윤리성을 잃어버린 일개의 패권국가에 불과하다.
로마제국에 비해 작금의 미국의 대외정책은 보편성의 지향이라기보다는 당대 미국의 이익이라는 자국중심의 합리성의 극단에 가깝다. 지금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의 패권은 그로 인해 분열의 시점으로 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반(反)미국 정서에 기대어 반미정권이 속속 들어서고 있으며 유럽 역시 미국에 대항한 정치적, 경제적 세력인 유럽연합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그들의 실리를 차리면서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자적 지역 패권을 차지하려 군사적, 경제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팍스로마나'의 정점에서 로마의 절대 제국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시오노의 지적처럼 미국 제국의 균열은 벌써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그렇게 쉽게 패망할지 몰랐다는 친일파 시인의 말처럼 제국의 균열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이미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 그러한 제국의 균열을 인구당 미국 대학원 유학생 수 1위, 영어강의를 할 수 있어야만 교수가 될 수 있다는 한국에서만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라는 것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아를 거울을 통해 비추어보는 나르시즘적 도취가 아니라 스스로를 낯설게 보려는 외부적이고 소수적인 시선일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미국화를 어떻게 할 것이 아니라, 미국화를 세계화로 믿는 외눈박이 전제를 낯설게 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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