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지쳐 병들어가는 노인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어도 살 맛이 납니다

등록 2007.10.08 09:23수정 2007.10.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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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가을 오후입니다. ⓒ 이승숙


저녁 반주로 오디술을 한 잔씩 마셨다. 작은 유리잔에 술을 따라 놓고 건배를 했다.


아부지요, 오래 오래 사시이소오.”
“오래 살아가 뭐 하겠노? 마침맞게(마춤맞게) 살아야지.”


아버지는 술잔을 입에 대시면서 말씀하셨다.

산뽕나무 열매로 담은 오디술은 색이 불그스름한 게 고왔다. 술을 앞에 두고 또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말할 사람도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시던 아버지는 말동무가 생기자 신이 나신 모양이었다. 틈만 나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다.

한 잔 술에 이야기꽃은 피고

“내가 술을 못 묵어서 안 묵은 게 아이라 일부러 안 묵었던 기라. 나는 술이 맛이 없더라꼬. 일부러 마시면 한 꼬뿌 정도 마셔도 암치도 않았는데 술이 맛이 없어서 안 묵었던 기라. 그래 안 마셔 버릇 했더이만 안 묵게 되데.

그런데 내가 딱 두 번 대취했던 적이 있었디라. 두 번 다 군에 있을 땐데 술 먹고 속에꺼 다 올리내고 보이까 다음 날 어떻키나 속이 안 좋던지, 그 이후로 술을 안 마셨지.”



아버지는 먼 옛날, 핫바지 입고 땡양달(햇살이 따가운) 길을 걸어서 군대에 입대하던 그 날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났던 그 해 8월 초순에 군에 입대했다. 집에 나이로 21살, 만 나이로 20살이던 1950년 8월 초순에 아버지는 집을 떠나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밥 한 번 배불리 못 먹고 살았던 곤궁했던 그 시절, 국민학교를 마친 사람도 별로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세상 물정에는 눈이 어두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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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 이승숙


청도 우리집에서 경산까지 70리도 더 되는 길을 걸어서 갔다 하였다. 중의 적삼에 핫바지를 입은 차림 그대로 경산 모 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했다고 한다. 근 팔백 명 정도 되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던 운동장은 먼지가 자욱하더란다.

아버지는 운이 좋아서 미군부대에 배치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화려한 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매끼 고기로 배를 채우게 되었으니 군생활 반 년도 안 되어서 키도 크고 장골이 되어 버리더란다.

그 당시 우리 한국 군대는 부정과 부패가 심해서 군인들이 늘 배를 곯았단다. 위에서 이리 떼먹고 저리 잘라 먹어서 정작 군인들은 먹을 게 없고 입을 옷도 없었다고 한다. 한국군들을 만나면 불쌍해서 봐줄 수가 없더란다. 다 떨어진 옷에 군화라고는 볼 수도 없었고 헌 고무신짝을 끌고 다니더란다. 하도 굶고 잠을 못 자서 한국군들은 전투할 힘도 없었다고 한다.

홀로 지내는 외로움에 병은 깊어가고

그렇게 아버지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평안도 영변의 청천강을 건너기도 하고 거제도 포로 수용소를 건너뛰기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혼자 지내셨다. 그래도 아버지는 외롭지 않았다. 아버지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놀러 다닐 일도 많았고 할 일도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 분들은 한 분 두 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이제 동네에는 안어른들만 남아 계신다. 몇 분 계시는 바깥어른들도 대부분 병중이시다. 아버지 역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로 보행이 자유롭지 못하시다. 그래서 아버지는 종일 있어봐야 말 한 마디 나눌 사람도 별로 없이 텔레비전을 친구 삼아 지내시게 된 것이다.

외로움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일 지도 모른다. 날마다 홀로 지내는 그 외로움 때문인지 아버지는 점점 약해지셨다. 한 해가 다르고 한 달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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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앞에 있으면 저는 아직도 어리광 부리는 딸입니다. ⓒ 이승숙


추석을 한 열흘 가량 남겨놓은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처남하고 의논해서 장인어른 모시고 오자. 내 보기에는 장인어른 오래 못 사실 거 같다. 이번 겨울을 저래 혼자 계시게 놔두면 봄까지도 못 사실 거 같다. 당신은 당신 아버지 일인데 왜 그리 무심해? 처남한테 전화 한 번 해봐라.”

지난봄에 굳이 내려가시겠다는 아버지를 모시다 드리면서 가을에 다시 모시러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긴 했다. 하지만 난 잊고 지냈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그러는 거였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자체가 신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힘들고 피곤할 게 뻔한데, 그냥 편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을 미적대면서 지냈다. 하지만 이대로 겨울을 나면 아버지가 내년 봄까지 견디지 못할 거라는 남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어른들은 그러신다. 물 한 그릇 끓여먹을 힘만 있어도 내 집에 있는 게 더 좋다고. 자식이 아무리 잘 해줘도 내 집이 편하고 더 좋다고 그러신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눕고 싶을 때 눕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집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로움은 어찌하나. 사람 소리 하나 안 들리는 고적한 집에서 날을 보내고 달을 맞는 그 고적함은 어찌 하나.

우리집에 와 계셔도 아버지는 외로우실지 모른다. 저마다의 일로 바쁜 우리는 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할 때도 많다. 하지만 같이 먹는 식사는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맛이 있는지 아버지는 슬풋이 담긴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비우신다. 그리고 차츰 기운을 차리고 계신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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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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