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아이건강국민연대와 함께 '한국의 아이들이 위험하다'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영양불균형, 가공식품 섭취, 체력 약화, 실내 위주 생활 등으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있습니다. 아이들 건강 문제는 이제 손 잘 씻고 이 잘 닦는 옛날식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아이건강국민연대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아이들 건강 문제가 폭넓게 논의돼 국정지표로 선정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이번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
컴퓨터 게임 중독증은 무엇인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컴퓨터 게임 중독증의 정의부터 내려 보자. 컴퓨터 게임 중독증의 정의는 이상심리학에서 말하는 중독증과 다르지 않다. 다만 중독의 대상이 약물 등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중독증이란 마음과 몸에 손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스스로 중단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때 스스로 중단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의존성, 내성형성, 금단현상, 조절능력 상실 등을 든다. 의존성은 간단히 말해 그 대상이 없으면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것이며, 내성형성은 그 대상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며, 금단현상은 그 대상의 공급이 중단되었을 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것이며, 조절능력 상실은 중독 대상으로 인해 심신이 자기 의지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상태다.
그렇다면 컴퓨터게임 중독이 과연 정신의학적으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가 하는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정벽, 도벽, 도박벽, 워커홀릭 등과 같이 행위에 마치 약물처럼 중독되는 현상은 흔히 찾아 볼 수 있으며, 컴퓨터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컴퓨터 게임의 과도한 사용이 끼치는 심신의 손상은 무엇일까? 우선 경견완 장애, 척추 측만 등의 신체적 손상을 들 수 있다. 또 과도한 긴장상태의 연속으로 인해 스트레스성 장애, 만성적 수면 부족 등도 심각한 손상이다.
그 외 사회성 상실, 대인관계 장애, 성격장애 같은 심리적 손상도 심각하게 나타난다. 컴퓨터 게임 중독은 단지 중독대상이 게임으로 바뀌었을 뿐 근본적으로 약물중독과 동일한 정신병리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게임 중독은 단지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질병이며, 게임을 많이 하는 아이들을 꾸짖어서 해결할 수 있는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그럼 게임을 못하게 하면 되지 않나?
문제는 컴퓨터 게임이 학원에 시달리고, 놀이시설이라곤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가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놀이수단이자 문화수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무작정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PC방이 즐비한 실정에서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다.
억지로 집에서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 게임을 하기 위해 가출한 청소년의 사례도 드물지 않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지 비난이나 억압이 아니다. 게다가 모든 약물이 중독대상이 아니듯이 모든 게임이 중독대상인 것도 아니다. 무조건 게임을 즐겨한다고 중독자로 몰어붙일 경우 도리어 세대간 문화충돌만 일으키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들게 한 원인을 찾고, 2)중독대상이 되는 유해 게임들을 선별해 내고, 3) 중독된 청소년들이 유해게임 대신 건전한 게임이나 취미생활을 하도록 이끌어낼 치료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중독 자체가 좋다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해서가 아니라 차라리 중독이라도 되고 싶은 심리적·사회적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대상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독 증세가 의심되는 청소년이 발견되면 먼저 그 주변의 심리적·사회적 원인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청소년을 게임중독으로 몰고 가는 사회·심리적 원인으로 가장 강력한 것은 단연 학업스트레스와 가족 상호작용 파괴다. 여기서 학업스트레스란 자신의 수행능력에 비해 과도한 수행기대가 누적되는 현상이다.
가족 상호작용 파괴란 가족 간 상호작용 빈도가 매우 적거나 있더라도 부정적 상호작용이 주를 이루는 경우다. 특히 평소 대화가 부족한 아버지가 어쩌다 한번 성적부진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한다거나 폭력, 폭언을 행사 할 때 그 영향력은 파괴적이다. 실제 게임 중독 청소년의 배후에는 십중팔구 폭력적이거나 부정적인 아버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중독되는 게임은 따로 있다
중독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서 아무 게임에나 중독되는 것이 아니다. 중독성이 강한 게임은 따로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독의 메카니즘이 선정성이나 폭력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실제 예술의 경우 선정성과 폭력성의 수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은 고전으로 불리고 어떤 작품은 포르노로 불린다. 문제는 폭력과 선정성의 여부나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즉 충분히 생각할 여지가 있는 상태에서 개연성을 가지고 주어지는가 아니면 단지 손쉬운 정서적 보상으로 주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 장면의 빈도나 수위를 기준으로 하는 지금의 등급심사로는 중독성 게임을 거의 잡아내지 못한다. 실제 많은 아동과 청소년이 중독된 게임들은 폭력성과 선정성이 거의 없어 전체연령 등급을 받은 경우가 많다.
중독적 게임의 특징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선정성, 폭력성보다 게임이 진행되는 구조와 메카니즘에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노력과 보상의 관계 왜곡이다. 한마디로 손쉬운 쾌감, 손쉬운 행복감을 주는 것이다.
이는 비단 컴퓨터 게임 뿐 아니라 모든 중독대상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마약은 아무런 대가 없이 복용하기만 하면 진정이나 각성이란 효과를 준다. 알콜도 이모저모 따지는 게 많은 와인보다 빠르게 취하는 소주가 중독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게임에 숙달되기 위한 노력이나 두뇌의 사용은 최소화하고 청소년이 바라는 대리만족, 성취감 등의 보상은 최대화 한 게임이 중독성이 높은 게임이다. 이런 게임은 난이도가 낮고, 진행속도가 느슨하다. 반면 노력을 들이지 않고 쉽게 승리하거나 많은 경험치와 전적을 올릴 수 있다.
이렇게 쉽게 심리적 보상을 얻으며 위로를 얻은 청소년은 학업, 가족 문제가 반복될 때 마다 게임에 매달릴 것이고, 나중에는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의존적으로 게임에 매달릴 것이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게임은 진행이 느슨하기 때문에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어른들의 눈에는 그다지 유해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건전하게 보이기까지 하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
먼저 게임 중독이 의심되는 청소년이 빨리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발생하면 무작정 게임을 금지하거나 차단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적대감을 형성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우선 먼저 가족 상담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하는 사소한 말버릇이나 행동이 청소년들에게는 심각한 억압과 정신적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드시 가족 상호작용을 점검해야 하며, 상호작용을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청소년의 각종 중독증은 백약이 무효다. 또 학업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른바 스트레스 푸는 활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간단한 방법은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모든 스트레스의 원천은 자기 능력을 초과하는 과업 기대수준이다. 적절한 초과는 자극이 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기대수준은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가족상호작용과 스트레스만 해결되면 대부분의 중독증은 거의 해결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이 주로 사용하는 게임의 속성을 파악하여 적당한 난이도를 가진 게임이나 다른 취미활동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부모나 교사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컴퓨터게임을 바라보지 말고, 컴퓨터 게임 고유의 논리와 기준을 가지고 게임을 평가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춰야 할 것이다.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예술영화와 포르노를 구별해내기 어렵듯이,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 중독적 게임과 건전한 게임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잘 범하는 오류가 “모든 게임은 해롭다”식의 공격적 반응인데, 이는 도리어 세대간 갈등만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가장 피해야 할 태도다. 덧붙이는 글 | 권재원 기자는 참교육연구소 연구기획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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