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에서 만난 공룡능선의 마지막 단풍

-원효의 전설이 서린 천성산에서 마지막 단풍을 보며

등록 2007.11.17 18:34수정 2007.11.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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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홍단풍 ⓒ 김대갑

산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홍단풍 ⓒ 김대갑

아마 원효대사만큼 우리나라 절을 많이 세운 이도 드물 것이다. 멀리 강원도 산골에서부터 경남의 한적한 골짜기에 있는 절의 안내판에까지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가 바로 원효대사이니 말이다. 또한 원효의 이름을 딴 암자는 전국에 수도 없이 많다. 도대체 원효대사는 몸이 몇 개였기에 그렇게 많은 절을 세운 걸까? 너무나 도력이 뛰어난 분이라서 그리 많은 절을 세우신 걸까? 


원효대사는 그 명성에 걸맞게 전국 명산대찰에 수많은 일화를 남기기로 유명한 분이다. 그 중에서도 천명의 성인과 관계된 아름답고도 기이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오는 산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경남 양산의 천성산이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는 천성산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산세는 높고 험준하며, 맑으면서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습이 천 가지 연꽃을 연상시킨다.’ 그만큼 천성산은 소금강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경관과 산세를 자랑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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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로 가는 길 ⓒ 김대갑

봉우리로 가는 길 ⓒ 김대갑

어느 날이었다. 천혜의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던 원효가 저 멀리 중국 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판자에다가 몇 글자를 써넣더니 허공으로 힘차게 던졌다고 한다. 허공을 가른 그 판자가 도착한 곳은 당나라의 태화사 마당이었다. 그때 태화사에서는 천명의 스님들과 신도들이 법회를 열고 있었는데, 갑자기 판자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지자 모두 마당으로 모였다고 한다. 바로 그 때, 거대한 바위 하나가 법당을 덮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원효대사의 법력이 천명의 목숨을 살린 것이었다. 그때 그 판자에 쓰인 글씨는 ‘효척판구중(원효가 판자를 던져 중생을 구하다)’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대중들이 너도나도 원효의 제자가 되겠다면서 원효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천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그들을 모두 교화시켜 천명의 성인으로 만들었고, 그 때부터 이 산을 천성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알려진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전설임에 틀림없다. 어찌 보면 너무 황당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천성산의 산세가 신비하다는 이야기다. 내원사를 비롯하여 89개 암자가 산 요소요소에 숨어 있는 천성산에는 그 전설만큼이나 기괴한 암벽들과 계곡들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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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사이의 단풍들 ⓒ 김대갑

봉우리 사이의 단풍들 ⓒ 김대갑

천성산을 여행하는 코스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코스는 내원사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공룡능선을 타는 길이다. 공룡능선이라. 저 멀리 강원도의 설악산에도 공룡능선이 있지만 천성산에도 공룡능선이 있다. 비록 장대한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천성산의 공룡능선도 그 나름대로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공룡능선을 타려면 일단 성불암 계곡 입구로 진입해야 한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가서 맨 먼저 부딪치는 수직 암벽, 일명 제1봉우리로 올라가면 공룡능선을 타게 되는 것이다. 이 수직 암벽이 가장 가파르면서도 험준한데, 이 봉우리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제법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복병들이 있으니 그게 바로 수직으로 이루어진 암벽을 로프에 의지해 올라가야 하는 코스들이다.

 

예전 원효대사가 천 명의 대중들을 교화할 때,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곳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짚북재라는 곳이다. 널따란 공터인 이곳에 원효대사가 큰 북을 매달아 놓고 북을 치면 산 곳곳에서 수행 중이던 천명의 대중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이 짚북재까지 가기 위해선 일곱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5군데에 걸친 로프 구간도 넘어야 한다. 물론 로프 구간은 여성들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짧으면서도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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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단풍들 ⓒ 김대갑

계곡의 단풍들 ⓒ 김대갑

이 공룡능선은 산하동 계곡과 성불암 계곡 사이의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능선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계곡들의 수려함은 가히 절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 능선을 타고 가면서 병풍처럼 까마득하게 벼랑을 이룬 암봉과 바위낭떠러지의 아름다운 경관을 올려다보는 멋 또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늦가을에 만난 단풍의 화려함이야 부러 말해 무엇일 정도로 황홀하다. 


험준한 제1봉이 사내다움의 극치라면 2봉과 3봉은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부드러운 봉우리다. 그러나 제4봉은 삼각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경사를 자랑한다. 그 삼각산 봉우리를 다 지나온 후 제5봉에서 잠시 물을 마시며 삼각산을 바라보는 맛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 그리고 곧 이어 나타나는 6봉과 7봉의 아기자기함. 아기의 부드러운 허리를 닮은 소담한 기운이 절로 느껴지는 봉우리들이다.


가만 보니 천성산 공룡능선은 휴식과 운동을 적절히 조화시킨 천혜의 운동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올라가면서 온 몸의 노폐물을 실컷 배출하면 적당한 때에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봉우리에는 펑퍼짐한 바위들이 보란 듯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바위 위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로 신통한 생각이 든다. 참 적당하게 올라가고 적당하게 쉬어가고, 알맞게 내려가게 만들었구나!


천성산에는 이외에도 수리봉, 옥녀봉, 집북봉, 애기암봉 등 수려한 봉우리 들이 많다. 계곡도 산하동 계곡, 성불암 계곡, 법수 계곡, 주남 계곡 등이 있는데, 이중에서 단연 아름다운 계곡은 아무래도 내원사 계곡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 계곡 근처를 소금강이라고 했을까? 넓은 암반을 하얗게 수놓으며 크고 작은 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내원사 계곡은 자연의 조화가 빚은 한 폭의 수채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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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의 고독을 바라보며 ⓒ 김대갑

고목의 고독을 바라보며 ⓒ 김대갑

공룡능선을 조금 빨리 타면 짚북재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천성산 정산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밟을 수 있다. 만일 급하게 가고 싶지 않으면 중간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은 후, 짚북재에서 잠시 휴식한 후에 계곡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다시 내원사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다.


내려가는 계곡에서는 삼단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만일 여름날이라면 청정하면서도 맑은 계곡수에 몸을 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계곡 물은 너무 맑고 부드러워 선녀들의 욕탕이 되어도 족할 정도이며, 가끔씩 떨어지는 홍단풍과 황단풍 잎새가 물 위를 달려가는 단아함이 켜켜이 묻어 있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새 공룡능선 입구. 그 갈림길에서 잠시 신발을 벗고 맑은 물에 손과 발을 담아 본다. 푸른 물의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등줄기로 시원하게 밀려오는 쾌감을 느낀다. 그 쾌감에 가볍게 몸을 떤 후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아, 계곡은 온통 추야홍적의 세계였다. 그때, 그 단풍잎 사이로 날아가는 재두루미의 흰 빛 날개가 어찌 그리 황홀한지! 숲 사이로 들려오는 정갈한 독경 소리에서 결 고운 여승의 가향이 절로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입니다. 천성산은 11월 10일에 다녀왔습니다. 
#천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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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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