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같은 비. 그러나 신부는 비 한방울 맞지 않았다.뒷산 야생화 꽃밭의 결혼식은 비 때문에 변경되었다. 그래도 신랑 신부는 그저 좋기만했다.
전광진
결혼하자, 이 곳 얼레지 꽃밭에서우리가 만약 섬에 살았다면 썰물 진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했을 것이다. 농촌에 살았다면 봄 보리 넘실대는 들판에서 식을 올렸을 것이다. 도시에서 살았다면 조용하게 식을 올릴 수 있는 곳을 물색했을 것이다. 굳이 특별한 곳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살고 있는 곳 주변, 여러명이 모여앉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산에 살고 있으니 산에서 결혼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기본이 정해지니 나머지는 일사천리, 물 흐르듯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몇번의 답사 결과, 결혼식 장소는 우리집 뒷산 언덕배기 '얼레지 꽃밭'으로 결정되었다. 바람도 놀고가는 양명한 곳이었고, 바로 옆에는 국수를 삶아먹기 좋을 개울이 흘렀다. 오페라를 하는 선배에게 결혼식용 드레스를 빌렸다. 이웃집 총각은 집 주변 꽃을 꺾어 부케를 만들어 주었다. 신랑이 될 남자는 장작을 넉넉하게 집어넣고 하객들의 잠자리를 보살폈다. 신부가 될 여자는 새 김치를 담고, 국수 육수를 끓이고, 잡채 거리를 준비했다. 부조 대신 떡과 막걸리가 들어왔고, 모두와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져 마음이 푸근했다.
하지만 변수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례와 사회자, 결혼 당사자로 구성된 '산골 결혼 추진위원단'은 비상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비가 오면 '얼레지 꽃밭'에서의 결혼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없는 신부는 비를 맞고서도 꽃밭에서 식을 올리겠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다. 나는 상관없지만 하객들을 비에 젖게 할 수는 없었다. 비는 쉽게 그치지 않을 성 싶었고, 아침의 상황을 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비상 대책회의는 해산했다.
신부는 국수 육수 끓이고, 신랑은 장작 패고결혼식 날 아침, 빗발이 제법 굵었다. 얼레지 꽃밭에서의 식은 무리였다. 동네 끝에 있는 아담한 법당으로 장소는 변경되었다. 스님이 직접 지은 암자였고, 남자와 여자는 그 곳을 좋아했다. 서둘러 식장을 차렸다. 동네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드니 순식간에 연단이 만들어졌고, 연등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삼삼오오 동네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모여들었다. 식장에 들어가기 1분 전까지 신랑은 하객들을 챙겼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고, "신부 입장!" 소리가 흡사 축제의 서막처럼 들려왔다.
주례는 두 분이셨다. 윗집 스님과 서울 계신 신부님의 공동주례. 농담같은 우리의 제안에 두 분 모두 흔쾌히 화답해 주신 것이었다. 신부님은 "가톨릭과 불교의 축복을 한꺼번에 받은 이 복많은 부부가 앞으로 얼마나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우리 모두 지켜봅시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고, 스님은 "이웃들과 함께 늘 지금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주례를 마친 스님은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어디 계신가 싶어 둘러봤더니 동네 아낙들과 함께 공양간에서 국수를 말아주고 계셨다. "꽃 같은 신부는 그냥 곱게 앉아있어." 환한 얼굴에 달같은 표정이었다. 나도 신랑도 그 국수를 먹었다.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전날 밤 깜빡깜빡 졸며 끓인 육수에 스님이 말아주신 국수였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모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