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지대-지뢰밭 바꿔 세운 학교를..."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19]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군내초교 최한

등록 2008.06.27 10:33수정 2008.07.1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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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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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촌' 군내초교 가는 길


장단콩마을로 유명한 통일촌의 군내초교(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산 64)는 올해 '나홀로 입학생'이 다니는 민통선(民統線, 민간인통제선) 안의 유일한 초등학교다.

그러나 지난 2월 말까지만 해도 이 학교는 전국 초등학교의 '나홀로 입학생'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미 2008년 8월을 기준으로 폐교되는 경기도내 통폐합 학교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월 15일 열린 졸업식 때만 해도 언론은 '민통선 군내초교 마지막 졸업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통일촌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국민권익위에서도 "폐교 조치는 위법 또는 부당하다"며 파주교육청과 도교육청에 이 학교의 폐교를 재검토하도록 권고함에 따라 최소한 1년은 더 시간을 벌게 되었다. 1학년 최한(8)군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만큼 이 학교에는 보배 같은 존재다. 그야말로 통일촌의 마지막 잎새이기 때문이다.

통일촌의 '마지막 잎새' 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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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학년 통합반의 '나홀로 입학생' 최한. 한이는 덩치가 커서 같은 반의 2학년 형, 누나들보다 더 '고학년생'으로 보일 정도다. ⓒ 김당



한이는 민해동·이유리·최다희 등 2학년 형·누나들과 같은 반이다. 군내초교가 우여곡절 끝에 폐교는 면했지만 올해부터 학급이 6학급에서 3학급으로 줄면서 복식수업(1·2학년 통합반)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한이는 덩치가 커서 형들과 어울려 있으면 누가 1학년이고 누가 2학년인지 구분이 안된다. 오히려 한이를 형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다. 1·2학년 통합반 담임 박수호 선생은 "덩치도 크지만 엄마가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서 그런지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학력수준도 높은 편이다"고 귀띔했다.


박수호 선생은 "월 1회 세 학교 공동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체험학습도 많이 하는 편"이라며 "한이에게도 미니홈피(사이월드)를 만들어 체험학습 내용 등을 기록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인근 마정초교 및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대성동초교와 '공동교육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도 세 학교 학생들은 김포 청소년수련원에서 1박2일 야영수련활동을 다녀왔다.

군내초교 강영민 교장은 교사들을 다른 학교에 보내 복식수업을 참관케 하는 등 차질 없이 복식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복식수업으로 인해 학력 결손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교과과정보다는 방과후학교가 파행 운영되는 것에 대해 걱정이 크다. 다양한 방과후수업을 맡을 외부강사를 초빙하려 해도 통합반 운영으로 교사 수가 줄어 업무 하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1·2학년 통합반의 방과후학교는 마을교회의 목사 부인 조한은씨를 방과후학교 교사로 초빙해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보육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영어와 미술 같은 특기과목은 서울시교육청의 '꿀맛닷컴' 같은 사이버가정학습 사이트를 이용한다.

'사랑과 즐거움이 넘치는 학교' 'since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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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의 꿈은 과학자 지난 4월 과학의 날에 '물로켓' 만들기 체험학습을 한 군내초교 1, 2학년 통합반의 이유리, 민해동, 최한, 최다희(왼쪽부터). ⓒ 군내초교



학부모들은 이웃한 대성동초교가 JSA(공동경비구역)라는 지역 인프라를 활용해 원어민 영어 토킹클럽 같은 영어 특성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군내초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복식수업 탓이라고 생각한다. 복식수업이 단식수업으로 환원되어야 교사 수도 늘고 방과후학교도 정상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학부형으로 인근 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는 이명한(군내초교 학운위 부위원장)씨는 "통일촌 인근 부대에도 우수한 강사 자원이 많고 부대에서도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재의 복식수업 및 교사 수(3명)로는 방과후학교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이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한이는 지난 4월 4일 과학의 날 행사 때는 물로켓 만들기 체험학습을 통해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장 좋아하는 과목은 운동(체육)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형·누나들과 두 편으로 나눠 이어달리기 시합을 하는 한이는 "줄넘기는 40번, 훌라후프는 200번까지 한다"고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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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즐거움이 넘치는 학교’ ‘since 1911’ 운동장에서 이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아이들. 이처럼 오래된 학교가 '숫자의 논리'에 따라 폐교가 추진되고 있다. ⓒ 김당



학교 앞 조회대에는 '사랑과 즐거움이 넘치는 학교' 'since 1911'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러나 한이가 내년에도 이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파주교육청은 여전히 군내초교의 통폐합을 '재추진'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늪지대와 지뢰밭 개간한 주민들의 피와 땀이 서린 곳"

이와 관련 김종율 파주교육청 관리과장은 "무리하게 폐교를 추진한 점이 있었기에 이를 보완하려는 것이지, 학생 15명으로 학교 운영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20살에 통일촌에 들어온 이장 이완배(56)씨는 "학교는 늪지대와 지뢰밭을 개간한 주민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곳"이라며 "학교를 숫자(학생수)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님과 1남2녀도 모두 군내초교 출신이라고 한다.

고1 때 부모님을 따라 통일촌에 들어온 이준섭(49·군내초교 학교운영위원장)씨 역시 이곳에서 자녀 3명을 낳아 모두 군내초교를 졸업시켰다. 그는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 마을은 죽은 것"이라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교를 지켜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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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촌 군내초교 전경 학교는 지뢰밭과 늪지대를 옥토로 바꾼 통일촌 주민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공동체이다. ⓒ 김당


"학생 15명으로 학교 운영은 어렵다"
[일문일답] 파주교육청 김종율 관리과장

- 군내초교가 올해는 일단 폐교 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교육청이 여전히 '재추진'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학부모들이 불안해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가.
"폐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다. 폐교 대상 학교인데 일정한 기간을 두고 폐교를 추진하는 쪽으로 변경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통폐합 방침은 주민 동의를 얻어 지역주민 및 지자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추진하라는 것인데 그 절차가 약간 미비했다.

그래서 주민의 민원을 접수한 고충처리위의 '폐교대상은 인정되지만 절차가 미비했다'는 권고를 수용해 절차를 충족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100% 주민 동의는 힘들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폐교를) 추진하려고 한다. 우리가 무리하게 추진한 점이 있었기에 이를 보완하려는 것이지 학생 15명으로 학교 운영은 어렵다고 본다."

- '통일촌' 주민들은 대성동초교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한다.
"대성동과는 차이가 있다. 거기는 유엔사와 중립국감독위 관할이고 국내 관할인 군내초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상대적 박탈감이 큰 군내초교 사람들이 불만을 갖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정이 다르다."

- 그러면 '복식수업'에서 '단식수업'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없는가.
"학교가 앞으로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모르는데 '폐교를 재추진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단식수업 환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관내에는 복식수업 학교가 29개교나 있다. 그중 학생 수 15명 이하가 5~6개 정도다. 따라서 단식수업 환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사실 군내초교가 폐교 대상에서 제외되어도, 현재 학생 수(15명)로는 단식수업 하는 데 약간 문제가 있다."

- 경북도교육청은 작은학교 통폐합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던데, 경기도는 그런 정책 전환 가능성이 없는가.
"정책 전환은 도교육청에서 할 일이지만 현재 우리는 '1면 1교 존치' 방침이다. 군내면의 경우 대성동초교과 군내초교 둘인데 대성동초교는 자구책을 내어 학생들을 불러모아 9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났다. 또 대성동초교는 우리가 마음대로 없앨 입장도 아니고 국제적인 문제라서 예외다.

주민들이 도교육청에 건의해 우리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역정서 등을 감안하겠지만, 효율성을 따져봤을 때 교과부의 통폐합 지침이 있기 때문에 (도교육청 차원의 정책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일부 '돌아오는 농산어촌 학교'로 존치가 검토될 수는 있지만, 현재 학생 수 60명 이하는 우선 폐교 대상이고 폐교는 인원수가 적은 데서 출발하는 수밖에 없다."

- 대성동초교는 공동학구로 외지인에게 개방되면서 학생수가 늘었는데, 군내초교도 공동학구로 개방하면 학생수가 늘 가능성이 있지 않는가.
"대성동은 학교에서 유엔사 경비대대사령관과 출입허용 협약을 맺어 공동학구로 개방한 것이다. 군내초교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대성동과는 사정이 다르다."

- 통일촌 주민들이 공동학구로 개방을 요청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동학구 개방은 검토되지 않았다.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연구해 보겠다."



#군내초교 #최한 #통일촌 #장단콩마을 #나홀로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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